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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이 시대의 또 다른 ‘을’

정여주 청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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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1.11 09: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여주 청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갑’의 횡포에 공분을 느끼며,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전쟁터에서 ‘을’로서의 분노를 내재하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최근 화제다. 많은 누리꾼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라며 이 드라마에 많은 공감을 보내고 있다.

드라마에는 고졸 학력의 계약직 신입사원이 정규직 사원에게 당하는 직장생활의 설움과 다양한 형태의 직장인의 애환을 에피소드로 풀어내며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갑’의 횡포에 공분을 느끼며,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전쟁터에서 ‘을’로서의 분노를 내재하고 있다. 또한 일부는 상대방에 대한 낮은 신뢰와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갑질’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갑질’이 문화적으로 깊이 뿌리박힌 결과 자신의 행동이 ‘갑질’이란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을'로서의 경험들이 이 드라마의 인기를 이끄는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는 직장맘인 선 차장을 통해 여성 직장인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중요한 회사 일정을 남편과 상의해 잡았지만 남편은 당일 상갓집을 이유로 어린 딸아이를 돌볼 수 없다고 말한다. 남편은 미리 상의했던 아내의 일정을 배려하지 않고, 갑자기 생긴 자신의 일정이 중요해 아이를 돌보는 일을 아내에게 떠넘긴다. 결국 선 차장은 ‘엄마’라는 이유 때문에 일을 희생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성의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평가 그리고 여성노동의 현실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해도 언제나 여성들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은 일차적 생계부양자가 아닌 출산과 양육, 가사 등 돌봄 노동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여전히 여성이 육아의 일차적인 책임자고 이는 직장맘에게도 그렇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서 맞벌이 가정의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가사노동 시간이 6배 높다고 한다. 여성취업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여성들은 가사노동과 직장이라는 이중적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터에서도 여성은 육아 때문에 온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노동자로서 승진에서도, 중요한 업무에서도 배제된다. 이 드라마에서 또 다른 인물인 ‘안영이’는 이제 갓 회사 생활을 시작한 여직원이다. ‘안영이’는 음식배달 등의 잔심부름을 맡아했고, “여자들이 문제다”, “여자들은 눈물바람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여자들이 의리가 없어서 그렇다”는 남자 직원들의 무시를 받으며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동료로서 여성이 대우받기 보다는 남성 직장인에 비친 여성 직장인은 숙련될 만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임신해서 업무공백을 만들고, 육아 때문에 직장생활에 몰입하지 못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또한 많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노동현실에 일을 지속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게 되어 경력단절 여성이 많은 것 또한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그려내는 다양한 ‘을’들의 아우성 중에서도 여성 직장인의 모습은 진정한 ‘을’의 모습을 담아내지 않나 싶다.

현 정부는 일·가정의 병행을 위해 시간 선택제 일자리, 대체인력 근무, 무상보육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수립하고 성공적으로 시행하는 것 역시 여성들의 안정적인 노동환경에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함께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분담을 질 수 있는 사회구조가 되지 않는다면,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이중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이 동반자로서 여성노동자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남성들 스스로의 인식이 변화돼야만 할 것이다.

‘을’로서의 여성을 양상 시키는 노동환경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OECD 최저 출산율을 자랑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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