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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역사문화를 앗아가는 도로명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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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1.17 19: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석 붕 전 청와대문화체육비서관

“지금이라도 우리 공동체 문화의 씨앗을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도로명 주소를 전면 시행한지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도로명 주소를 도입하기 시작한 1996년도부터 따지면 20여년 만에 시행된 것이다. 그 만큼 정착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그에 따른 비용도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됐다. 그러나 안전행정부가 지난 6월 중순 전국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 자기집 도로명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응답은 55.5%에 불과했다. 올해에도 정부는 도로명 주소 홍보에 85억원이 투입됐고, 내년에도 막대한 예산이 잡혀있다. 지금도 포털사이트 ‘다음’에 ‘도로명주소 홍보’라고 검색을 하면 1만2000여 건의 뉴스가 검색되고 전국의 지자체마다 도로명 주소 정착을 위한 홍보기사로 가득하다.

기존의 지번주소를 일제 식민 통치와 조세 징수 등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산업화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불규칙적이며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국민 생활 불편을 해소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이유로 도입됐다. 잘못된 말은 아니다. 동일한 지번에 가옥이 여러 채가 있고 번지를 또 쪼개다 보니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정부의 일이다. 그러나 이는 도시생활에 기반을 둔 정부 정책결정자들의 넓지 못한 시야를 드러낸 결정이다. 지명에는 수천년 쌓인 역사와 문화가 서려있다. 또한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주는 끈끈한 인력(引力)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전통사회의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농산어촌은 더하다. 역사와 문화는 돈으로 절대 만들 수 없다. 시간이 쌓여야 되고 추려지고 살아나야 하는 덧이다.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라는 낱말과 바꿀 수 없는 정서가 있다.

고향인 당진시 대호지면의 지명을 봐도 마을이름의 유래와 정서가 깔려 있다. 모래사장이 성처럼 둘러 싸여져 있다는 사성리,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섬에 복숭아와 오얏나무가 많이 자생하였다하여 도이리, 토양의 색깔이 유난히도 붉어서 부르게 되었다는 적서리 등 이름만 들어도 지명유래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구성원으로서 생노병사를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대호지면 ㅇㅇㅇ로‘만 남았다. 정체성과 정서적 공동체로서의 마을이름이 없어졌다. 아직은 주민들이 그대로 있으니 주소이름과 상관없이 정서 공동체로서 마을의 정체성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이러한 공동체는 자연사하고 말 것이다. 그와 더불어 마을마다 간직하고 있는 많은 역사와 문화도 사라질 것이다.

편리성에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존의 주소는 마을이름만 들어도 어디쯤이다 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을사람들 조차도 일일이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게 돼 버렸다. 네비게이션 등 기술의 발달은 도로명 주소 도입의 명분과 당위성을 더욱 무색하게 해준다.

문화융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4대 국정기조의 하나이다. 역대 정권에서 ‘문화’를 국정운영의 핵심기조로 삼았던 정권도 없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박대통령의 혜안과 의지가 얼마나 크고막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 엿볼 수 있다. 수천년을 쌓고 가다듬어 지금도 향유하고 있는 마을 구석구석에 깔려 있는 이야깃거리가 바로 문화융성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소중하고 잠재가치가 큰 마을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화의 기반이 바로 주소명 도로에 의해 사라질 운명의 기로에 놓여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공동체 문화의 씨앗을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도시와 농산어촌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시간을 두고 켜켜이 쌓아온 우리의 문화와 공동체정신이다.

김 석 붕 전 청와대문화체육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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