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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인문학의 열풍,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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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3.29 19:19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세상엔 많은 공부가 있다. 제일 어려운 게 과거 공부이고 그 다음이 행정실무 공부, 그 다음이 고문(古文) 공부이다. 고문인 문(文)·사(史)·철(哲)을 익히 배운 뒤에 과거 공부나 행정실무 공부를 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성공할 수 있으나 고문에는 어두우면서 과거 공부만 한다면 뒷날 아는 것이 없어서 크게 고생만 한다.” 다산 정약용은,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위다산제생증언(爲茶山諸生贈言)’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고문, 요즘 말로 문학, 역사학, 철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임을 일깨웠던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됐다. 후마니타스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다움’이라는 뜻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문화를 수놓아왔다. 이른바 ‘문·사·철(文·史·哲)’로 불리는 문학 사학 철학은 인문학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역할을 해왔다. 숱한 문학작품들은 인간과 삶을 탐구하고 그 의미에 천착해 인간정신을 풍요롭게 했다. 철학은 존재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진리를 궁구하여 인간정신의 빛이 되어왔다. 역사학은 인간 삶의 궤적을 탐구하며 그에 깃든 진실을 추구해왔다.

▷한국사회에 이상기류라 할 만큼 ‘인문학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번 주말에 각종 인문학 모임에 다녀왔다는 이들을 여럿 만났다. 지자체들도 대중 강좌를 앞 다투어 개설하고 있다. 유명한 인문학 강사들의 인기는 연예인에 버금갈 정도라고 하고, 인문교양서의 판매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있어야 할 대학에선 인문학과들이 위축되고, 아니 사라지고 있다. 군대 갔다 오면 학과가 남아 있을까, 고민할 정도라니 황당하기조차 하다. 줄줄이 통폐합되고 있는 곳은 철학과, 어문학과들, 물리학과 등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비행기의 원리를 발견한 과학자요, 인체해부도를 그린 의학자며,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요, 인생론을 쓴 철학자다. 한 사람 속에 많은 분야가 통합돼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그토록 창조적일 수 있었다. 이 세상 모든 학문의 기본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지혜가 철학이요, 인문학이다. 아카데미즘의 성채에 갇혔던 인문학이 거리로 나와 대중과 호흡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작 연구하고 가르쳐야 할 대학에선 사라지고 있는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봐야 하나. 인문학까지도 거꾸로 가는 건가.

안순택<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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