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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임시정부 96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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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4.12 18:3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중국 상하이(上海)를 찾는 한국인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신천지 카페거리 맞은편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옛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다. 20위안을 내고 짧은 영상을 보고 나면 안내해주는 골목안 빨간 벽돌집이 그곳이다. 임정(臨政)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부터 13년 동안 이곳을 청사로 썼다. 안으로 들어가면 회의실, 집무실 등이 있고 벽에는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 등 임정 요인들의 빛바랜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의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아침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불렀다고 한다.

▷한 나라 정부 청사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해 가슴이 아픈 이곳에 1919년 4월 10일 이동녕 선생 등 제헌의원 29명이 모였다. 역사적인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하고, 이시영, 이동녕 선생 등이 공동 기초한 10개조 헌법을 심의하고 정강정책, 임시헌장 선포문을 확정한다.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이라 정하고 헌장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못 박은 곳이 이곳이다. 그리고 이틀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성립되었음을 국내외에 정식 선포했다. 이날이 1919년 4월 13일이니, 오늘이 96돌 임정 수립 기념일이다.

▷남의 땅 중국 상하이에서 축적한 돈도, 조직도 없이 새 나라 건설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것이다. 열악한 주변 환경, 내부 분열을 딛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26년을 싸운 역사는 그 어떤 수식을 넘어 기적에 가깝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점령돼 괴뢰정부가 들어섰던 프랑스는 그 치욕을 상쇄하는 자존심을 레지스탕스 저항운동과 드골 장군이 영국에서 창설한 자유프랑스 위원회에서 찾는다. 우리에게 상하이 임시정부와 ‘대장부’ 윤봉길 의사가 없었더라면 일제 36년 역사를 기술하기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개인자격으로 귀국한 백범 김구 선생은 환영대회 연설에서 ‘단결’을 반복했다. “민주단결의 정부, 3·1혁명의 민족단결 정신 계승, 각 당파의 철과 같은 단결….” 민족이 단결하지 못한 점이 백범 선생에게 얼마나 한이 되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제 4년 후면 임정수립 100년인데 민족의 단합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안타까운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일고 반목이 생기고 뿔뿔이 갈라지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극에 달하고 있는 지금 임정정신과 역사적 교훈이 더 절실해진다.

안순택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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