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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소풍, 그리고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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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4.15 18: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춥다라는 느낌이 가시는 봄이 되면 교실에서는 학생들끼리 심심찮게 나누는 공통 관심사가 있다. 바로 소풍이다. 학생들, 특히 초등학생들에게는 봄 소풍은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리는 중요한 행사이다. 그날만은 먹고 싶은 것도 많이 먹고, 적당한 용돈으로 사고 싶은 것도 사고, 적당한 잘못은 선생님도 크게 화내지 않고….

요즈음은 현장 체험 학습이다하여 조금은 옛날의 소풍 기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싶다. 즐겁고 들뜬 마음으로 浩然之氣 할 수 있는 기회마저 학습이라는 굴레에 얽히니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고궁이나 유적지에 가면 배낭을 메고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아이들의 모습이 꼭 기특하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현장 체험 학습이라는 굴레 속에서 갇혀 있어 보이는 것이리라.

소풍은 어쩌면 우리 조상님들이 해온 삶의 철학 같기도 하다. 소풍(逍風)을 한자어로 해석하면 바람을 쐬면서 거닐다라는 말이다. 집이나, 교실에서 갇혀 있다가 바람을 쐬면서 자연을 즐긴다는 말이다. 消風이라고도 쓴다. 이는 바람결에 날려버린다는 말이다. 바람을 쐬면서 자연을 벗하고 머릿속의 고민거리를 날려버리는 일이 소풍이다. 그런 소풍을 현장 체험 학습으로 변모시켜 또 다른 고민거리를 주는 것은 아닐는지. 소풍은 소풍이어야 한다. 다르게는 원족(遠足)이라고도 했다. 멀리 걷는다는 말이다. 발걸음을 멀리 뗀다, 즉 자연을 벗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라시대는 화랑이 있었다. 자연 속에서 스스로(요즘의 자율학습?) 충·효·예·지·용을 체득하였다. 천렵(川獵)도 있다. 농번기에 열심히 일하고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이웃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천렵하는 날은 부담 없는 마을의 잔치 날이기도 했다.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물고기 잡는 법도 배우고, 음식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자연을 보호하며 생명 존중을 대해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과정이 되었다.

이런 소풍이 학교, 특히 선생님들에게는 고역스런 일거리로 변해 버렸다. 학부모들이 보내온 선물(먹을 것, 소품 등) 때문이다. 청렴, 공직기강 확립, 김00 법 등의 말속에 ‘내 아이 가르치느라 수고 많으셨어요’하는 선물(膳物. 감사히 드리는 물건)이 뇌물(賂物. 주고 매수하는 물건)로 변해버려 인정과 감사가 없어져 간다. 촌지(寸志.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가 그 좋은 뜻이 요즘은 왜곡되고 있다. 천자문을 떼면 떡을 해가던 그 풍속이 없어졌다. 책거리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된듯하다. 스승의 날 교문을 걸어 잠그는 학교도 있다. 인정과 사랑이 사그러져 가는 서운함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40여 년 전 시골 초등학교에서의 소풍이 생각난다. 만화영화의 “짱구” 같이 얼굴이 둥그런 황00라는 학생이다. 가정이 어려운 학생이었다. 시골이지만 마땅한 논밭도 없이 부친이 남의 집 일을 거들어 주고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으나, 늘 밝고 봉사 활동도 앞장서며 웃기는 말을 잘하여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꽤 있었던 학생이었다. 봄소풍을 다녀와 하교를 하였는데 집에 가지 않고 쭈볏 쭈뼛 내 주위를 맴돌더니 친구들이 보이지 않자 “선생님 이거요” 하고는 신문지로 감아 싼 적은 물건을 하나 전해주고는 달아나는 것이었다. “00야! 이게….”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이미 저 만치 달아나는 00이의 뒷모습을 보며 계단에 앉아 풀어 보았다.

몇 겹의 신문지를 풀어보며 눈에 뜨인 것은 '새마을'이라고 쓰여 있는 필터 없는 담배갑 하나와 “선생님, 소풍이라 선생임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돈이 없어 00네 소 꼴을 두 번 베어다 주고 받은 돈으로 산거예요. 선생님 고마워요.”라는 글귀가 적힌 공책장 조각이었다. 담뱃갑을 보며, 공책장을 보며 갑지기 마음이 쿵하고 눈물이 맺혔다(아마도 그 당시 그 담뱃값이 10원인가 했고, 고급담배인 청자가 100원인가 했을 때였다. 보통의 시내버스 요금이 20원이었던 것 같다)

소풍 때가 되면 00이가 생각난다. 그 작은 선물이 기억난다. 선물이기에 마음을 울린다. 요즘 각급 학교의 현장 체험이 한창이다. 뇌물이 아닌 선물이 풍성히 오가는 소풍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종구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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