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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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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5.18 19:01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처음 불린 것은 1982년 2월 20일이다. 이날 5·18 광주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다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성원과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며 윤과 만났다가 1979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망월동 묘역에서 열렸다.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소설가 황석영의 집에 모인 ‘산자들’은 ‘앞서 간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굿 ‘넋풀이’(‘빛의 결혼식’이라고도 한다)를 기획하는데, 노래굿의 대단원 합창곡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황석영이 민중운동의 대부 백기완의 장시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따와 가사를 썼고, 김종률이 곡을 붙였다. 김종률은 1979년 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으로 은상을 수상한 전남대생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노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곧바로 광주를 넘어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았고 운동의 현장마다 역사의 북소리로 고동쳤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거냐, 합창할 거냐를 두고 올해도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가 나서 제창이 가능하도록 지정해달라는 결의안까지 냈으나 국가보훈처는 기념곡 지정 기준이 없다는 등 개운치 않은 이유를 대며 “정부 의전편람에 따라 합창을 할 수밖에 없다” “북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국민통합에 저해된다”고 고집 부렸다. 결국 반쪽짜리 관변 행사로 쪼그라들었으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유가족들과 시민이 원하는데 왜 그렇게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후 정부 주관 첫 기념식이 열린 2003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까지 기념곡으로 제창됐다. 그 때 정부는 기념곡 지정 기준도 몰랐고,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국민통합을 저해했다는 건가. 기념곡은 역사성과 현장성이 담겼을 때 존재가치가 있다. ‘시대가 가사를 쓰고 역사가 곡을 붙인 노래’를 빼앗고 박제노래를 고집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과거의 아픔을 직시하여 극복하려 않고 잊히기만 바라는 나라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안순택<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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