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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시시콜콜 태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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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04 17: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굉장한 폭우다. 천둥과 함께 바가지로 퍼붓는 비에 개울은 금방 흙탕물이 되었다. 성난 물결은 콸콸 급류가 되어 흘러가기 시작했다. 잠깐 폭우가 그치면 또 짜증스러울 만치 덥다. 지난 주 13호 태풍 ‘사우델로르’가 지나간 뒤의 여파로 그렇게 더운 줄은 알지만 이 무더위로 더 강하고 거센 태풍이 만들어질 악순환이 또한 걱정스럽다.

몇 해 전 태풍 매미가 지나갔을 때 일이 생각난다. 초속 63㎞로 진행된 태풍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냈다. 마산야구장의 조명탑사진이 플라스틱 넘어지듯 쓰러졌다. 부산항에서는 또 무거운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부서지는가 하면 주차장의 차들이 바람에 날려 서로 부딪치는 등 수많은 피해를 냈다.

가장 많은 피해가 속출한 건 일본이었다. 특별히 사과 과수원이 많은 야오모리 현에 타격이 컸다고 한다. 태풍이 지나간 뒤 한 사람이 문득 하늘을 보니 꼭대기에 사과 몇 개가 남아 있었다. 채 익지도 않은 사과를 따서 판 것인데 엄청난 값으로 나갔다. ‘합격’이라고 쓴 스티커를 붙이고 “이 사과는 어마어마한 태풍에도 살아났습니다. 이 사과를 먹는 학생들도 원하는 학교에 반드시 들어갈 것입니다”라는 내용을 첨부했던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낙심했다가 하늘을 본 것은 절망 때문일 텐데 꼭대기에 달린 사과가 눈에 띄었다. 저 사과들이 어떻게 남아 있었지? 라고 하면서 태풍에도 살아남은 녀석들에게 어떤 의미를 붙여 팔 것인가를 궁리했을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것을 주인은 그때 처음 알았겠지만 그래도 태풍은 초미의 사태다.

태풍(颱風)은 북태평양 서쪽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특이한 것은 그 이름으로, 피해를 받는 14개 나라에서 제출한 140개 이름을 28개씩 5개조를 만들어 순차적으로 사용한다. 1년에 대략 서른 번 지나가므로 3년 내지 4년마다 돌아오는데, 앞서 엄청난 피해를 준 매미 같은 이름은 폐기되고 새로운 이름으로 대체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괌에 있는 미국 태풍 합동 경보 센터에서 국가명과 영문의 알파벳 순서로 작성된 이름표를 쓰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공군과 해군의 예보관들은 자신의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했으나 여성운동가들의 반대로 남녀 이름을 골고루 붙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에 아시아태풍위원회가 생겼는데. 아시아 거주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경계를 강화하려는 게 그 목적이었다.

이례적으로 앞서 말한 매미니 나비니 하는 것 외에도 장미 너구리 등 대부분 작고 귀여운 이름이 많은 건 그 위력이 약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호주의 예보관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였다고도 하는데 예를 들어 “현재 마이클이 태평양 해상에서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식이다.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인 건 착상이기는 하나 태풍이 지나가야 주변이 말끔해지듯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오히려 활력을 준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태풍이 몰려오기 전까지 모든 곡식은 알맞게 내리는 비를 맞고 볕을 쬐면서 허우대를 키우는데 문제는 낱알이 영글 즈음부터다. 주로 위도 약 5도 부근의 해면 수온이 ℃ 약 27도 이상의 따뜻한 바다에서 발생하는데, 바닷물이 가열되면서 가벼워진 공기가 저기압을 만들고 그때 동반되는 엄청난 폭우와 무더위에 곡식이 영그는 폭이다. 8월 초에는 벼도 이삭이 나올 테고 콩이나 팥 등의 밭작물도 태풍에 알이 굵어지면서 속을 채워가기 때문이다.

세력이 약해지기를 바라면서 여자 이름 또는 작고 나약한 뜻의 이름을 붙인다지만 그래서는 옹골찬 가을이 될 수 없다. 그것을 우정 바라는 게 아닌, 거두기 위한 과정으로 보면 견딜만해진다는 의미다. 호주의 예보관들은 미운 사람의 이름을 쓰기도 했으나 인생 역시 장벽과 장애물을 극복하는 과정이라면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필요하고 그로써 유익한 삶이 된다.

태풍과 운명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우선 언제 올지 모르는 게 같고 한바탕 지나갈 때마다 변화가 오는 것도 공통점이다. 신이 내리는 재난에는 이유가 있다지 않은가. 언제 닥칠지도 모르지만 돌연 진로를 바꾸는 게 더 큰 속성이듯 운명 또한 귀추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로써 원숙해지는 삶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태풍에도 변수가 있다는 것은 일본의 사과밭 주인처럼 위기를 기회로 삼을 때라야 성립된다.

여름이면 태풍에 시달리듯 삶에 동반되는 건 운명이었으나 대처하는 우리 자세는 일괄적이지 않다. 공통점이 많다는 것은 그 자세도 같아야 한다는 뜻인데, 농작물과 집채가 휩쓸려갈 때는 묵묵히 순응하면서도 운명 앞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탓하고 책임을 지운다. 앞서 잠깐 무더위로 만들어질 태풍을 걱정했지만 그렇게 지나가야 가을이 풍요롭다. 나의 삶이 짜증스러운 여름 같다 해도 태풍이 지나간 뒤의 하늘을 생각하고 싶다. 태풍에도 멀쩡한 과일을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던 것 또한 태풍이 아니면 터득할 수 없는 지혜라는 걸 숙지하면서……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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