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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아우내장터 봉화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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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2.22 16:5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성 열 천안역사문화연구실 실장

학생 유관순은 서울이화학교와 고향 병천을 오가며 천안읍교회 담임 안창호 목사 내외분과 가까이 지내기도 했다. 안창호 목사 딸 안예나는 유관순이 이화학교 재학시절 짝꿍이었다. 유관순 학생 아버지 유중권 선생도 무시로 천안읍교회를 방문하여 안창호 목사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천안읍교회(서릿말)는 천안지역의 중심교회로 모든 정보 소식이 집산되고 있었다. 안창호목사는 천안지역 만세운동 중심인물로 예비되었다. 천안읍교회를 출발하여 북면 매송, 수신장명, 병천지령리, 입장양대 직산, 율금리교회를 순회하며 매주 집회를 할 수 있었다.

병천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은 계열별로 거사 행동 계획이 추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신면 쪽에서는 장명학교와 장명교회 홍일선, 김교선, 한동규, 이순구 등이고 갈전면 쪽에서는 병천교회 박제석, 박봉래, 김구응, 병천성공회, 신명학당 김태순, 강준희 선생, 동면쪽에서는 지령리 교회, 흥호학교 조인원, 조병호, 유중권, 유중무, 조만형, 김상훈, 김용이, 유관순, 유예도 등이었다. 주동하는 지도자들은 서로 거사 연락을 봉화를 신호로 하여 장날 4월1일에 독립만세 운동거사를 하기로 하였다. 동부 6개면에 조직적으로 거사 일자가 알려졌고 봉화는 드디어 올랐다. 4월1일 병천아우내장날 아침 일찍부터 원근에서 모여들기 시작한 민초들은 수백에서 차츰 수천에 이르게 되었다.

지도자들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된 태극기는 모여든 군중들에게 나누어 전달됐다. 처음 보는 태극기였다. 군중들이 수천에 이르게 되자 김구응 선생은 장대에 태극기를 높이 달아 세우고 높은 곳에 올라가 소리 높여 외쳤다. 독립선언서! 목청껏 읽어 내려가자 군중들은 숙연해지며 민족독립의 결연한 의지가 응집되어 갔다.

독립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김구응, 조인원과 지도자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군중들은 만세를 따라 외쳤고 또 외쳤다. 나라 잃은 설음과 울분, 독립을 갈망하는 만세소리는 울부짖음으로 하늘을 향해 폭포같이 토해냈다. 지도자들이 앞장선 만세시위대는 밀물처럼 움직이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거침없는 노도였다. 만세시위가 절정에 이를 때 병천 주재 일제 헌병들이 허겁지겁 긴급 출동하여 시위대와 맞서 해산시키려 했다. 김구응 선생이 앞장선 시위 군중들은 위협하는 총칼을 든 일제 헌병들 앞에서 당당하게 독립만세를 외쳤다.

겁에 질린 헌병들은 총칼을 휘두르며 발포를 서슴지 않았다. 시위대 앞에서 만세를 외치던 김구응 선생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김구응 선생이 쓰러지자 어머니 최정철 여사가 시신을 부둥켜 안고 울부짖으며 일제 헌병들에 절규 항의하자 일제 헌병은 무자비하게 어머니를 총으로 쏘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앞장섰던 김구응 선생 모자가 총에 맞아 비참하게 쓰러져 숨을 거두는 것을 보자 평화시위 군중들은 죽음 앞에서 흥분이 노도로 변했다. 지도자들은 병천 헌병 분대장을 결박하고 분대를 점령하게 된다. 어떤 격분한 청년들은 파견분대소의 전화선을 끊고 분대소 건물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조인원 전도사가 군중들의 흥분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자중하여 평온을 회복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태가 돌변하게 된다. 지원요청을 받은 천안 헌병대 30여명이 트럭을 타고 도착하자 시위 군중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총검을 휘둘러 대며 무차별 사격을 하므로 갑자기 붉은 피가 튀는 살육시장이 되었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일제의 만행으로 유관순 아버지 유중권 전도사와 어머니 이씨 등 19명이 순국하고 30여명이 부상당하는 처참한 살육을 저질렀다.

유관순 양은 일제 총칼에 비통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시신을 유중무, 조인원, 김병호, 김용이 등에 업혀 시위대 40여명과 함께 헌병파견소로 몰려가 파견소장과 일제 헌병들에게 달려들어 강력히 항의하다 체포당하게 된다. 유관순 양의 부모를 잃은 원통한 울부짖음은 그치질 않았다. 쉬지 않고 끌려가면서 독립만세! 아무 죄 없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살려 내라! 울부짖으며 외치고 또 외쳤다. 천안헌병대에서도 자동차 안에서도 구치소에서도 형무소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절규는 계속됐다. 유관순 양과 같이 피검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고 죄 아닌 죄인으로 옥고를 치른 나라 없는 선량한 민초들도 많고 고문만 당하고 처절한 모습으로 풀려난 민초들도 많았다.

병천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서는 20명이 순국했고, 26명이 실형을 받은 기록이 전해 온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서훈 추서 받지 못한 열사들도 적지 않다. 유관순 누나의 절규하는 만세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조선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 통일민족 완전독립 만세, 곧 우리시대의 정신이다.

김 성 열 천안역사문화연구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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