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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비 오는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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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5.24 15: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둥그레동인회장
오늘도 예의 빗 속을 걷는다. 우산은 챙겼으나 에멜무지로 쓰고 있다. 워낙 비를 좋아해서 장대비 속을 걷기도 하는데 하물며 속삭이는 것처럼 간질이며 내리는 비다. 우산을 쓰고 가다가도 저만치 던져 버리고 짐짓 뛰어들고 싶을 만치 정겨운 이슬비였으니까.
 
비 오는 풍경에 심취하다 보면 옷이 젖는 줄도 모른다. 길 가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신경이 쓰이기는커녕 비를 맞는 느낌은 언제나 상쾌하다. 그래서인지 학교 다닐 때 친구들 가족이 우산을 갖고 교문 앞에 와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우산은 틀림없이 챙기는 성격인 건 온 가족이 알고 있는 터였다. 혹 챙기지 않았어도 비 맞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기 때문에 엄마 역시 구태여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
라도 남들은 다 가져오는데 생각하면 서운할 법하련만 워낙 좋아하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얼마 후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따스한 아랫목에 엎드려 책을 읽던 게 지금도 무척 행복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이따금 비 오는 날이 왜 그렇게 좋았던 걸까 라는 생각이 들곤 했으나 돌아보니 주변의 모든 식물 또한 우산을 쓰지 않았다. 이른 봄 돋아나는 새싹도 고스란히 맞으며 꽃 피울 준비를 한다. 봄비는 혹 살짝 뿌리기 때문에 과히 젖지는 않는다 해도 한여름 장대비까지 묵묵히 맞고 있다. 
 
나처럼 비를 피하기는커녕 우정 맞으면서 잎을 늘리고 꽃을 피우면서 열매를 다는 게 그들 생태였을까.
어쨌거나 비를 생각하면 늘 싱그러운 기분이었다. 연못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수많은 물 동그라미가 생기는 모습도 하나의 리듬이었다. 곧 이어 파문이 커지고 동그라미가 겹치면서 연못이 한 개 커다란 원으로 확산되곤 했었지. 얼마 후 자작자작 비가 잦아들면서 비 갠 언덕의 푸른 초원이 드러나는 풍경도 향수적이었다.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로써 초록이 두드러지고 자연의 리듬으로 재생되는 것 또한 경이로운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 비도 때로는 무서운 사태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렸을 적 이웃 마을에 큰물이 들었다. 물난리에 산사태가 나면서 마을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행히 물은 금방 빠졌으나 가장집물은 대부분 물에 잠기고 말았다. 일일이 꺼내서 볕에 말려 거풍을 시키느라 마을 사람 모두는 더운 폭양에 일철보다 더 바쁘게 지냈다. 다행히 날씨는 계속 좋아서 한 보름 지나자 대부분의 집은 얼추 정리가 끝나고 찬바람이 나기 전에 집들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보수할 수도 없이 무너진 집은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다. 찬바람이 나기 전에는 밖에 천막을 치고 임시로 기거했으나 초가을이 되자 그도 어려워졌다. 급한 상황에 미처 수리도 되지 않은 집에 들어가 살자니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어떤 집은 물이 나오지 않아 이웃집에서 물을 길어 먹는 걸 보았다. 전기 시설도 미처 끝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사는 등 말이 아니었다. 그 때는 어려서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불편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좋아해 온 비가, 너무 좋아서 우산을 챙기고도 무심히 맞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는데 그 비도 지나치게 많이 내릴 때는 재앙이 된다는 것을 본 충격처럼 놀라웠던 그 느낌.
 
나도 비를 맞고 다니다가 병이 나서 단단히 홍역을 치렀던 것이다. 열이 펄펄 오르는가 하면 거짓말처럼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낙엽이 질 무렵이었는데 평소 조심스러운 성격대로 우산은 챙겼으나 공교롭게도 가랑잎을 줍느라 허대다 보니 절반은 비를 맞고 다닌 폭이었다. 날씨까지 추워지는 바람에 한 열흘 앓은 끝에 나았으나 겨우내 감기로 고생을 했다. 그렇게 앓으면서도 젖은 가랑잎이 못 미더워 창호지에 하나씩 펴서 말리던 일이 눈에 선하다. 열에 들떠 바라보았을 때의 그, 비를 맞아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던 신비의 색감.
 
이제금 생각하니 봄비는 내릴수록 따스해지고 가을비는 내릴수록 추워졌다. 내리면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자니 봄비는 당연히 따스해진다. 반면 가을비는, 그 중에서도 늦가을 가랑비는 겨울로 들어서는 간이역이라 차가울 수밖에 없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맞고 다니다가 뜻하지 않게 감기몸살을 앓은 셈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비를 맞고 다녔으니 좋아하는 것은 무엇으로든 막을 수 없는가 보다.
 
아무리 어려도 그 때의 사건을 의식해서, 비를 맞고 다닐지언정 초겨울 가랑비는 경계했어야 하는데 그런 기억이 없다. 피하기는커녕 그 때 단단히 면역이 들었는지 이후로는 비를 맞고 다녀도 뚜렷이 탈은 생기지 않았다. 웬만치 나이 든 지금은 그 때처럼 젖도록 맞고 다니지는 않아도 빗방울이 떨어질 때의 싱그러운 리듬은 더더욱 좋아하게 되었으니 얄궂다. 나 자신 비를 맞고 다니는 게 왜 그렇게 좋은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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