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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침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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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6.20 17:5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혜 숙 수필가
[충청신문=이혜숙 수필가] 비가 내린다.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바람도 제법 불고 있다. 세찬 바람으로 처마 끝에 매단 풍경소리가 요란하다. 올해는 가뭄과 더위로 힘들었다. 태풍 소식과 함께 내리는 비는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이런 날 부침개 부쳐서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데 내 벗들은 어디로 갔을까. 길 위에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간절히 막걸리 생각에 잠겨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까치의 울음처럼 반가운 손님을 기대하며 재빨리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 대신 천둥과 번개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더 강한 대형 태풍이 몰아치는 소식이다. 가슴이 두방망이질한다. 손이 떨리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녀의 몸 속에 침입자가 생겼단다. 주인 몰래 잠입해서 폐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나 보다. 도둑고양이처럼 야금야금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침입자의 동태를 알아채지 못한 그녀는 잦은 기침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다. 병원에서도 침입자의 소재를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침입자는 안심하고 머리까지 들어가 둥지를 틀었다. 어지러워 힘들어하면서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기고만장한 침입자는 온몸을 휘젓고 다녔다. 뼛속까지 들락거리며 그녀의 몸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최후의 순간에 고통을 느낀 그녀가 찾은 큰 병원에서 폐암4기에 머리며 뼈에까지 전이 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들어야 했다.
 
그녀는 생활력이 강하고 욕심도 많은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실패하면서 온갖 일을 하면서 강하게 살았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그녀는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봉사도 많이 하고 농사도 많이 지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건강을 자신했던 그녀는 큰 병이 몸에 들어왔는데도 단순 감기로만 생각했다.
 
감기가 낫질 않는다며 이 병원 저 병원 다니기에 큰 병원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여덟 달을 그렇게 고생하더니 결국 암이란 못된 놈에게 공격을 당했다. 매우 건강하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녀이기에 믿기지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인지 노인들 봉사에도 아주 열심이었던 그녀. 자신의 몸에 나쁜 놈이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아픈 몸을 이끌고 어른들 돌보러 다녔던 그녀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설거지하다가 손이 떨려 칼에 손을 베었다.
 
태어난다는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천국에 간다고 하고 지옥에 간다고도 한다. 또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현실에서 지은 업보에 의해 가는 곳이 정해진다고 한다. 윤회하거나 도를 이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죽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말일 뿐 확인된 것은 없다. 
 
죽을 때 어떨까? 아플까? 무서울까. 마취했을 때처럼 정신이 몽롱해질까. 술이 많이 마셔 취했을 때처럼 갑자기 필름이 딱 끊어질까? 에피쿠로스는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어 있는 상태에서는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난 두렵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며 많은 환자를 보아서 여간해선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편평태선이란 입병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마음이 약해진 걸까. 가슴이 떨리며 머리가 하얗게 텅 비워지는 것 같다. 
 
누구도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둘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다. 석가래 썩는 정도의 병이라면 고칠 수 있겠지만, 대들보가 무너지는 큰 병이 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까. 
 
쉴 새 없이 비바람이 불고 있다. 그녀의 아픔이 눈물이 되어 내리는가. 저 비가 그녀의 병을 쓸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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