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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추석과 해루질 물때

이정희 시인.둥그레동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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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09.20 15:2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둥그레동인회장
[충청신문=이정희 시인.둥그레동인회장] 바야흐로 추석이다. 녹음은 헐거워지고 초록물 삔 들녘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논 가운데 벼도 이삭을 잔뜩 단 채 무거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햇밤이 나오고 대추도 살짝 붉었다. 절기는 이르지만 차례는 무난히 지낼 것 같다.
 
초록물 군단이 물러간 뒤에 영글고 익어가는 계절을 보니 해루질이 생각난다. 해루질은 물 빠진 갯벌에서 어패류를 잡는 전통 어로 방식이다. 초록물살로 뒤덮여 있던 들판 역시 썰물이 지고 이제 갯벌에서 소라며 낙지 조개를 캐듯 동부와 두렁콩을 따고 누렇게 익은 올벼도 거둘 수 있겠지.
 
해마다 추석이면 들판에서도 썰물이 지고 거기서 나온 곡식이며 과일로 차례를 지내는 게 색다른 의미로 그려진다. 추석이 최고 해루질 물때라는 것도 음력 보름인 까닭이다. 밤에도 불을 밝혀 잡기 때문에 달이 밝으면 작업이 쉽고 그래서 달이 가장 밝은 추석을 해루질 물때가 좋다고 하는 것일까. 보름밤이야 늘 밝지만 추석을 직역하면‘가을 저녁’이 되듯 목가적인 그 이름은 달 밝은 가을 밤이라는 뉘앙스가 강했다.
 
추석을 한가위 또는 가베라고 한 배경은 베짜기를 장려했던 신라 유리왕 때로 거슬러 간다. 내기가 끝나면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해서 갚은 것 때문에 가베라고 했다. 오곡이 익고 과실이 영그는 계절이었으니 한껏 마시고 즐기는 풍경이 그려진다. 추석도 그 해 초벌 따고 거둔 햇과일 햇곡식으로 차례를 지내는 의식이었다. 가을은 그만치 풍요로운 계절이고 바닷가에서도 풍어가 잇따른다. 특별히 추석을 전후할 즈음에는 아이들도 돌만 뒤집으면 낙지를 잡을 수 있다고 할 만치 물때가 좋은 시기다.
 
해루질은 절기에 따라 다르나 대략 보름부터 열아흐레까지가 적기라고 한다. 많이 빠질수록 갯벌은 더 드러나고 밀물 때까지의 시간도 넉넉하다면 멀리까지 가서 잡을 수 있다. 언젠가 물 빠진 서해안에서 조개를 잡던 날의 기억 하나. 꽃게를 파내고 나면 저만치 조개가 보였다. 개흙이 묻어도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나는 게 재미가 났다. 잠깐 쉰다고 하늘을 보면 새파란 수평선과 떼를 지어 다니는 갈매기 소리.
 
그런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지쳐 버렸다. 눈으로는 풍경이지만 막상 들어가면 딴판이었다. 나의 경우는 갯벌체험에 불과했어도 녹초가 되었는데 완전히 빠질 때까지 물 따라 들어가면서 잡는 해루질은 얼마나 힘겨울지 상상이 간다. 파도소리 들으며 잠들다가 물때에 맞춰 나가는 게 참 목가적일 것 같았는데 밤중에도 불을 밝히며 일하는 걸 몰랐다. 도구 역시 호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특수한 지형이나 물속의 개 조개를 잡으려면 한 손 괭이와 갈고리 등 다양하다. 낙지를 잡을 때 역시 돌을 뒤집기 위한 괭이가 있는 것만 봐도 대대적인 작업이 따르고 구색을 맞추자면 힘들다.
 
우리 마을도 속칭 복숭아 골이다. 인근의 시골에 보면 뒤늦게 전원생활을 한다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 복숭아꽃이 필 즈음 우연히 지나가다가 풍경에 반해서 귀농한 사람들인데 실제 와 보니 무척 힘들더란다. 더러는 포기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몇 몇 남은 사람은 보는 것과 딴판인 전원생활의 내막을 조금씩 알 것 같다고도 했다.
 
지금 맞는 한가위도 비슷한 분위기다. 넘실대는 금물결은, 벌레만 생겨도 노심초사 이파리 하나만 시들어도 거름과 퇴비를 주면서 이룬 결과다. 마침내 그로써 장만한 차례상과 흐벅진 황금 들녘 때문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처럼”이라고 부른 것은 아닌지. 명절이 끝나면 본격적인 가을걷이와 함께 부지깽이도 덤벙대는 바쁜 절기가 되겠지만 내남없이 넉넉한 마음은 가을볕만치나 따스했다. 밤중에도 불 밝혀 가며 굴을 따고 조개를 캐는 어부들처럼 벼 포기 하나 콩 그루터기 일일이 돌보며 애쓴 농부의 손길을 본다고나 할지.
 
우리 삶에도 해루질 물때가 있다. 살 동안의 어려움도 밀물처럼 차오르고 이어 썰물이 되면서 소라니 꽃게를 캐는 바닷가에서처럼 아기자기한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아울러 물때가 좋은 날은 많이 잡히는 대신 한꺼번에 물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드문 일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올 경우에는 속수무책일 테니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다.
 
해루질과 추석(秋夕)의 가을밤은 전혀 무관하지만 다달이 보름에는 그 시기가 되고 올 추석이 유독 해루질 물때가 좋다는 말에 잠깐 그 의미를 돌아보았다. 갯벌에 들어가 직접 해 보니 생각보다 수월하지만은 않은 기억도 소중했다. 한가위니 중추절 같은 일반적인 의미 외에 또 다른 것을 돌아본 느낌이다. 심심파적 아닌 생업이 되면 힘들어지는 사실과 아름다운 것일수록 만만치 않은 과정을 표방하는 삶의 속내를 숙지해 본다. 풍경까지도 보름달마냥 차오르는 한가위 어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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