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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민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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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08.21 17:18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강희진음성예총 부회장

민아야, 잘 들어갔니? 널 보내고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앉아 있다 들어왔단다. 너는 모든 걸 말해서 시원하다고 했지.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후련함과 함께 괜히 털어 놓았다는 후회의 감정으로 울면서 가지 않았나 싶어 내내 마음이 쓰인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해서 기쁘게 나갔는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너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져 가슴이 덜컥 했다. 자주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너에게서 뭔지 모를 불안함이 느껴졌거든. 그런데 그런 큰 아픔을 안고 살고 있었구나. 한번이라도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보 같다고 중간 중간 몰아 세웠던 내가 후회되기도 한다. 좋은 집안에 좋은 대학까지 나왔고 좋은 성품을 가졌지만 무례한 남자를 만나니 아무 소용이 없구나.

그 동안 네가 별거를 하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가끔 남편과 같이 있는 너를 만나기도 했고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너의 부부를 봤기에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별거를 하면서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불끈 하더라. 거기다가 아이가 20살 생일을 맞이한 다음날 바로 이혼을 요구 했다고 했다. 많은 망설임과 고민 끝에 합의 이혼을 했는데 그 이유가 동거하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 학교입학 문제였다고 하니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너 또한 이혼을 한 후에 알았다고 하니 그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물론 부부의 문제는 제삼자가 속속히 알 수는 없겠지만 남편이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시작 된 별거였다고 하니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었어.

집에 들어와서도 계속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구나. 지난달에 읽었던 케이트 쇼팽의 단편 소설집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다시 읽어보았다.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라고들 하더라. 19세기 후반에 쓰인 소설이라는데 지금 읽어도 그 상황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 이 소설속 내용은 모두 여성의 이야기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슬프기도 했단다. 

단편소설 중에 너를 만나고 와서 인지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과 ‘데레지의 아기’를 다시 읽었다.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출장 간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가 문을 잠그고 자유를 외치며 자신의 결혼생활을 생각하며 읊은 대사가 마음에 와 닿더라. 남편이 죽었으니 이제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는 누구를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같은 인간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해도 된다고 믿는 이의 아집으로 인해 감정이 상처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대사가 정말 여성으로서 공감이 되었다. 소설의 끝은 이런 생각으로 앞으로의 삶은 오직 자신을 위해 살 것이라고 다짐한 아내였는데 잘못된 소식으로 한 시간 후 남편이 살아 돌아오고 그 여성은 살아 돌아 온 남편을 보고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야. 반전의 묘미는 있었지만 끝내 그런 삶을 살지 못한 그 여성이 안쓰러웠어. 

‘데레지의 아기’에서는 자신의 아기가 태어난 후 흑인의 피가 섞인 아이임을 확인한다. 그 남편은 아내가 입양아라는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내의 조상 중에 흑인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경멸하며 내쫒아 버리고 말아, 사실인즉 남편의 몸속에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단다. 그런데 자신을 전혀 들여다보지 못하고 아내에게 원인을 전가하는 남편의 이야기가 민아 너를 생각하게 했다. 읽고 났더니 더 답답하구나.

민아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 어렵게 결정하고 일어선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용기 있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렴. 아직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친절한 사회는 아니다. 최근의 ‘미투(me too)운동’의 양상만 봐도 여성으로서 이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잖니? 하지만 민아야. 앞으로 혼자 살아갈 너의 세상은 누구를 위해 살지도 말고, 누구의 말에 상처 받지도 않는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다. 오직 너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기를 바라본다. 다시 만났을 때는 편안하고 환한 미소를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강희진 음성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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