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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으로] 한 짝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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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8.10.01 16:07
  • 기자명 By. 충청신문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한기연시인. 평생교육강사

지난 일요일 여름 샌들을 샀다. 올 여름은 다 갔지만 11월에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갈 예정이다. 가격도 쌌지만 색상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신어보니 무척 편했다. 차 뒷좌석 아래에 새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어찌하다 보니 차에 두고 월요일 하루를 보냈다. 수업 장소로 이동하면서 뒷좌석 아래를 보면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연두색과 초록색 끈이 있는 샌들만 봐도 여행의 설렘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월요일 저녁 수업을 하러 가면서 아이들을 태우고 갔다. 행여나 발에 밟힐까 염려되어 앞 좌석 아래로 신발을 옮겼다. 그런데 화요일 저녁 수업을 시작하기 전 신발 한 짝이 없어진 걸 알게 됐다. 수업 내내 사라진 신발 한 짝에 대해 생각하느라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어제 일을 생각했다. 신발을 안전하게 앞자리로 옮겨 놨지만, 그 자리에도 아이가 타고 있었다. 집에 데려다 주면서 흘리지는 않았나 싶어서 그 아이에게 문자를 했다. 본 적 없다는 답신이 왔다. 여행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물건이기도 했지만 살 때부터 마음에 쏙 들게 애착이 생겼다. 한 켤레를 다시 사고 싶은 마음에 매장에 전화했지만 받질 않았다. 

지난 밤 잃어버린 한 짝의 신발을 두고 스스로에게 책망과 위로를 번갈아 하다가 잠을 설쳤다. 운전을 하면서 보이는 한 짝의 신발이 신경 쓰여서 뒷좌석으로 던졌다. 한 순간에 쓸모없게 된 신발 한 짝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가지고 있자니 속상하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는 한 짝의 신발을 보면서 유명한 간디의 일화가 떠올랐다.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기차를 타려고 기차 발판에 오르려는데 한 쪽의 신발이 벗겨져 기차 밖으로 떨어진다. 떨어진 신발을 주울 수 없었던 간디는 잠시 후 신고 있던 한 쪽 신발마저 기차 밖으로 던졌다. 의아해 하는 친구에게 간디는 ‘누군가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쪽이 다 있어야 신을 수 있을 게 아닌가?’라는 말을 했다. 내가 쓸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간디의 마음이 담긴 일화이다. 간디처럼 위대한 지도자는 아니지만 나 또한 그러한 마음이 들었다. 

신발이 없어진 지 이틀이 되었다. 월요일 오후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왔던 길을 되짚어 가 보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해 보고 미련을 버리고 싶었다. 이른 아침 두 곳을 가보니 역시나 없었다. 마지막으로 월요일 저녁 수업을 했던 면사무소로 갔다. 그런데 건물 외벽 아래 자갈 돌 위로 신발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짐작대로 앞에 탔던 아이가 내리면서 흘렸나 보다. 눈 앞에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그 자리에 놓아 둔 듯 보였다. 신발 한 짝이 남아 있는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누군가의 배려라고 믿고 싶었다. 초등 도서인 ‘아름다운 가치사전’에 보면 ‘배려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주차장 구석에 놓여 있는 신발 한 짝을 보는 순간 ‘배려’가 떠올랐다. 

우습게도 그 뒤로 큰 아들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에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온 일이 생겼다. 키높이 구두인 자신의 신발 한 짝과 슬리퍼 한 짝을 신고 집에 온 것이다. 뒤뚱거리며 비틀거리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도 다행히 술집에서 구두 한 짝을 찾아왔다. 아들이 서울로 간 후 차 뒤 칸에 슬리퍼 한 짝이 있는 걸 발견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자신의 신발만 찾아오고 슬리퍼 돌려주는 걸 잊은 듯 했다. 며칠 동안 노심초사하면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하는 작은 수고로움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행동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기에 못 본체 할 수가 없었다. 

슬리퍼 한 짝을 비닐에 담는다. 내일은 꼭 주인에게 돌려 줘야겠다.

 

한기연 시인. 평생교육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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