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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만만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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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04.05 20: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기자
내가 나가는 음악학원의 희수는 까다로운 악보가 나올 때마다 신경질을 부린다. 그럴 경우 다른 아이들도 계이름이 어렵다는 구실로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으뜸음을 아는데 왜 못 읽느냐고 지청구를 줘도 처음부터 그렇게 했다면서 고집을 피운다. 꼬맹이들은 그렇다 쳐도 수준급인 애들까지 읽어달라고 할 때는 당혹스럽다. 스스로 계이름을 따져서 시작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가는 앞으로 결혼생활도 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더니 이혼을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고 한다.

알고 보니 희수 부모가 이혼을 하였단다. 부모가 이혼을 한 탓으로 쉽게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 게 아닌 가 싶다. 유달리 기분이 좋은 날은 엄마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데도 하루 이틀 자고 오기도 한다. 꾸중을 듣지 않느냐고 했더니 허락을 받았단다. 아빠는 직장 때문에 어쩌다 들어오는 것 같고 희수 역시 새엄마 될 사람과 식사도 같이 했다는 걸 보니 아빠가 다른 여자와 사귀는 대신 엄마와 만나는 게 허용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어쩌다 있는 일이고 대부분 풀이 죽어 다니는 걸 보면 이혼의 심각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녀온 뒤에 보면 메이커 신발을 신고 근사한 가방을 메고 뽐내는 걸 보면 안타깝다. 47.4%에 육박했다는 우리나라의 이혼율에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혼자 사는 데도 별다른 불편이 없는 편리한 주거 시설에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힘들고 고역스러운 일을 견디지 못하는 습성이 가장 큰 문제다.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까다롭고 복잡한 게 많다는 걸 알았을 테고 참을성 여부가 문제로 등장했겠다.

그 배경을 인터넷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낱말을 입력하면 별의별 내용이 나오지만 나는 사전이나 도감이 체질에 맞다. 우선, ‘고드름’의 경우 ‘고’로 시작되는 말에서 ‘드’와 ‘름’으로 연결되고 바로 앞에 고드랫돌이 나오므로 앞뒤의 낱말까지 익히게 된다. ‘싱겁기는 고드름장아찌’라고 하는 속담까지 추가되므로 인터넷에 비해 자세한 풀이가 없다는 건 속단이다. ‘범’이라는 낱말의 경우 ‘범도 새끼 있는 골을 두남두다’라고 하는 속담이 나오고 결국 ‘두남두다’라는 말까지 찾게 된다. ‘자기와 관련 있는 것을 편든다’는 뜻으로, 한 가지 때문에 생소한 낱말까지 알게 되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쉽게 찾는 대신 금방 잊어버리고 참을성까지 부족해지는 게 그 단점이라면 사전이나 도감을 찾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이든 기다릴 새 없이 이루어지는 여건이다. 아이들에게 뭔가 해 줄 때는 일정 기간을 두고 약속을 잡았다는 이웃 사람의 얘기가 떠오른다. 뭔가를 갖고자 할 때 곧장 들어오면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경우 짜증을 내게 되므로 아이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다. 금방 들어 줄 수도 있지만 짐짓 뜸을 들이면서 기다리게 해야 물건의 가치를 알고 소중히 간수하게 된다. 아직 어린 게 뭘 알까 싶었지만 몇 번 그렇게 교육이 된다면 기능할 것 같다. 어릴 때는 물건 하나로 끝나지만 좀 더 자라 어떤 소망이나 염원을 향해 갈 때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깨우치면 어려움이 닥칠 때도 무난히 헤쳐 나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원인을 찾자면 간편한 식생활이다. 아침 식사는 빵과 우유로 대체하고 출출할 때 먹는 새참은 손쉽게 끓일 수 있는 라면으로 해결한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탓인지 간단히 해먹는 음식문화가 판을 치는 요즈음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밀가루 빵이나 감자를 쪄 놓고 기다리던 일이 새삼스럽다. 나 역시 잘 되지 않는 부분이나 가족을 기다리면서 밥을 안치고 곰국과 찌개를 끓이는 정성이 아쉽다. 그런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가운데 느긋하고 원만한 성격으로 형성된다면 살짝 끓이거나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 때문에 매사 성급한 기질로 바뀌고 결혼생활의 장애 요소가 된 거라는 짐작도 무리는 아니다.

결국 선진국이 되면서 쾌적한 환경으로 바뀐 걸 주된 원인으로 생각했다. 결혼보다 복잡한 게 이혼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건만 너무들 쉽게 밀쳐버린다. 과묵하고 참을성이 많은 사람은 그나마 덜한데 의지가 약한 사람이 더 나약해질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결혼까지 파기할 정도니 잡다한 일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심심파적으로 생각했다가는 자기 혼란에 빠질 수 있기에 무엇이든 복잡하고 힘들게 이루어진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옳지 않을까.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정신훈련을 쌓다 보면 높은 이혼율도 웬만치는 줄어들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이정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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