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에 면회 온 누이에게 줄 그림을 한 장 한 장 그리는 모습, 파리시립동양미술관에서 동양화 강의를 하고 후학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책을 쓰는 모습, 타피스트리방에서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 찍는 모습, 오래되고 버려진 구둣방을 빌려 대형작품을 제작하는 모습, 해변에서 굴러온 나무를 가져와 직접 정으로 조각하는 모습까지.
이번 이응노미술관 ‘예술가의 집’ 전시는 그야말로 그 일생의 한 부분을 비디오로 돌려 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전시실 초입에 세워진 병풍은 동양화가 이응노 선생의 면모와 필법 등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응노화백이 일본에서 유학 후 유럽에 진출, 동양화 후학을 길러내기 위해 교육 방법을 고심하며 쓴 책들도 전시돼 있다.
파리 응접실로 연출한 2전시실은 1960~1970년대 이응노 선생이 타피스트리방에서 찍은 흑백사진을 모티브로 한 공간이다. 그 당시 턴테이블, 서양벽지 등 소품과 연상되는 것들을 재구성했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샹송과 함께 자연을 바라보며 1960년대 프랑스 응접실을 경험할 수 있다. 벽에는 이 시기 세브르 지역 작업실에서 처음 작업한 콜라주 작품이 걸려있다.
이응노 선생 마지막 작업실이었던 ‘프레 생 제르베’를 연출하기도 했다. 프레 생 제르베는 파리 근교에 있던 구둣방이었다.
곽영진 학예연구사는 “3전시실은 최대한 이응노선생의 작업실과 비슷하게 연출하려고 노력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동양화 서실은 협소했고 파리 시내 작업실은 비용이 비쌌다. 큰 조각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이응노 선생은 이 구둣방을 작업실로 얻어 판화를 비롯한 대형작품을 제작했다.
동양화 작가들이 '입체'를 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응노 화백이 특별한 이유다. 그가 가진 ‘평면이 입체가 되고 입체가 평면이 되는 류’의 감각, 어떤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다방면의 작품활동은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응노선생은 작업실을 구할 때도 자연경관이 좋은 곳을 얻기 원했다. 이번 전시는 작업실 연출이나 이응노의 방을 연출하는데 이런 ‘자연친화적’ 개념들을 최대한 도입하려 노력한 결실이다.
자연친화적 성향 때문에 작품을 위해서라도 생가지는 절대 꺾지 않았다는 고암 선생은 해변가 등에서 굴러온 나무나 폐목들을 갖고 정으로 직접 파서 조각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류철하 관장은 “국내와 세계 미술관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미술사적인 양식과 내용을 전시하는 것을 벗어나 문학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석 등을 의도하는 창의적인 전시가 진행되고 있어 이응노미술관도 그런 트렌드를 인식, 시민들이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전시를 고민한 결과물이 ‘예술가의 방’이라는 전시주제로 나타났다”며 “이 전시를 보고 다양한 생각을 공유해서 시민들이 좀 더 많은 공감을 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