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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비원이라 당했다"…대전 아파트경비원, 업무 중 폭행·시비 휘말려

감정노동자 경비원의 삶

일하다 코뼈 부러지고, 정신적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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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6.24 17:25
  • 기자명 By. 이관우 기자
대전 A아파트 세대공사 신고서
대전 A아파트 세대공사 신고서 (사진=이관우 기자)

[충청신문=대전] 이관우 기자 = “오죽하면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극단적 선택도 생각해봤겠습니까. 가족이 무너지는 걸 볼 수 없어 버티고 있지만, 제가 ‘경비원이 아니었어도 이런 일을 당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분통합니다.”

대전 A아파트 경비원 홍모(66)씨가 그날의 악몽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업무 특성상 주민, 외부인 등과 마찰이 잦을 수 밖에 없는 그는 감정노동자다. 이런 홍씨가 업무 중 폭행사건에 연루된 건 3개월 전이다. 당시 현장에서는 홍씨의 코뼈가 골절되고 이가 흔들릴 정도의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반복되는 감정노동 업무로 쌓인 고름이 터진 것이다.

승강기로 인테리어 자재를 운반하려던 B업체를 홍씨가 제재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B업체는 공사가 진행 중인 한 세대에 자재를 배송하면서 '승강기 사용금지'라는 A아파트의 공사업체 준수사항을 위반하려 했던 것이다.

A아파트는 입주 또는 리모델링 공사 시 승강기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공사업체 준수사항에도 “공사기간에 자재는 사다리차를 이용하고, 승강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건설자재 납품업체는 관행적으로 승강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반장인 홍씨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주민 편의·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내 일”이라면서 “그날도 규정에 따라 승강기 사용이 안된다고 B업체에 수차례 설명했지만 무시당했다. 관리사무소 직원까지 와서 승강기 사용을 못하게 하니 1층에 자재를 쌓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렇듯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B업체로 인해 홍씨의 시름은 깊어졌다.

건설자재 적재 또한 위반사항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홍씨는 "왜 하지말라는데 계속 하냐"며 격노했고, B업체를 재차 저지하며 힘겨운 사투를 이어갔다. 그러나 감정노동의 끝은 상처 뿐이었다. 쌓아둔 자재를 건드렸다는 시비에 휘말린 홍씨는 B업체 사장과 몸싸움을 벌이게 됐고, 결국 코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 치료 기간에는 급여도 받지 못했다. B업체 사장도 안경이 부러지는 등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홍씨는 "제가 처음부터 화가 났겠어요"라며 "계속 무시당하고 끌려다니다 보니, 저도 경비원이기 전에 사람이라 감정이 상했죠. 그렇다고 당시 상황이 두렵고 힘들어서 제가 피하거나 가만히 보고 있었다면 주민을 배신한 행동이었겠죠"라고 했다.

B업체는 어쩔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B업체 사장은 “우리는 배송만 담당하기 때문에 승강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 어딘가에는 자재를 둬야 다음 배송지로 떠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정을 경비원에게 모두 설명했고, 쌓아둔 자재는 공사를 총괄하는 담당자가 돌아와서 처리할 예정이니 잠시 기달려 달라 했지만 (경비원이) 완강하게 '안된다'면서 자재를 발로찼고 싸움으로 번졌다”고 해명했다.

아파트경비원에게 폭력·갑질을 일삼는 일이 잇따르는 가운데 대전에서도 경비업무 중 폭행사건에 휘말려 상해를 입은 아파트경비원이 뒤늦게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검찰은 홍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B업체 사장은 벌금 150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A아파트 주민들은 이 같은 결정이 부당하다며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관계자는 “우리 사회는 경비원들이 최소한의 존엄성도 받지 못한 채 일하는 것이 너무 당연시되고 있다. 이번 사건도 경비원의 노동에 대한 저평가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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