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유족회장은 울먹이며 힘겹게 추도사를 이어갔다.
22일 오전 10시께 열린 한국전쟁 71년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진혼제 자리에서다.
'추모식'이라는 단어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떠올렸던 것과 달리 많은 유족과 취재진으로 골령골은 부산했다.
짧은 묵념 이후 이어진 진혼는 차분한 공기속에 제례가 시작됐다.
전미경 회장을 시작으로 황인호 동구청장, 박민자 의장이 이어 술잔을 올렸다.
곧이어 낮은 울림의 종소리가 들리며 금비예술단 전연순 단장의 진혼무가 이어졌다.
전 단장의 떨리는 손끝이 억울한 죽음들과 슬픔을 가슴 속에 묻고 살아온 유가족들의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는 듯 그들의 마음을 대신해 공기를 쓰다듬었다.
고요한 무용수 몸짓에 모든 감정이 담겨있었다.
춤에 담긴 의미를 깊게 공감한듯 박민자 의장은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어진 추도사에서 전미경 회장은 "지난해 유해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 이 작은 곳에서 234구의 유골이 발견됐다"며 "지금까지 발굴이 가능하도록 늘 관심 가져주신 허태정 시장과 '필요한 것은 없으시냐'며 항상 챙겨주신 박민자 의장에게 감사드린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을 말했다.
황인호 청장은 "3000여 명이 희생됐으나 우리가 14년 동안 발굴해낸 유족은 288구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제서야 땅속 진실들이 환한 곳로 나오는 것처럼 진실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 후손과 후배들이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만들어질 평화공원은 평화와 인권, 생명을 상징하는 하나의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한다"며 "전쟁 참상이 다신 이 땅에 일어나지 않도록 할 산교육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골령골은 1950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 4.3사건 및 여순사건 관련자 등 정치범과 대전·충남지역 민간인들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끌려와 집단 처형을 당한 비극의 현장이다.
유족 신순란 손녀인 진은설의 노래 '골령골 산허리'가 산내에 울려퍼질 때쯤 해를 가린 구름은 거의 걷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