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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권오설·이선호·박래원·이동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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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6.01 13:23
  • 기자명 By. 장선화 기자
왼쪽부터 권오설, 이선호, 박래원, 이동환 선생(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왼쪽부터 권오설, 이선호, 박래원, 이동환 선생(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충청신문=천안] 장선화 기자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6월의 독립운동가'로 권오설·이선호·박래원·이동환 선생이 선정됐다.

이들 4명은 1926년 6월10일 순종 장례일(인산일)에 일어난 학생 중심 민족 독립운동인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한 주요 인물들이다.

권오설 선생은 6·10만세운동의 모든 계획과 추진을 주도했으며 만세시위 때 사용하기 위한 격고문과 그 밖의 전단 등을 직접 작성했다.

선생은 6·10만세운동 관련 사건으로 체포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옥고를 치르던 중 출옥을 며칠 앞둔 1930년 4월1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이선호 선생은 6·10만세운동에서 중앙고보생 30여명과 함께 만세를 외치면서 격문서 약 1000여장과 태극기 30여매를 배포했다.

선생은 법정에서 "자유를 절규하면 자유가 생긴다는 결심으로 만세시위의 선봉에 나섰다"고 밝혔다. 선생은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27년 9월20일 감옥에서 풀려난 뒤 일본으로 건너가 한인 노동자 노동운동에 종사하다가 1933년 귀국했다.

박래원 선생은 권오설 선생에게서 받은 자금으로 인쇄에 필요한 소형 인쇄기 2대와 용지, 활자, 기타 필수품을 구입해 인쇄 준비를 마쳤다.

선생과 천도교 관계자들은 격문 지방배포와 지방조직 연락을 위해 계획을 세웠지만 선생은 징역 3년형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동환 선생은 6월10일 오후 2시 동대문 밖 동묘 앞에서 박용규 선생 등과 함께 격문 700여매를 배포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선생은 6월19일 6·10만세운동 주모자로 지목돼 중앙고보생 18명과 함께 일경에 체포됐다. 그는 1926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지만 경성복심법원 공소심에서 1927년 4월1일 징역 1년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권오설 선생에게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이선호 선생에게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박래원 선생에게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이동환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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