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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와 광고 경계를 허물면 언론은 자멸한다

용문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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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10.17 18:24
  • 기자명 By. 손규성 기자

 

 

 

-“앤드류 랭호프는 신문이 보도 내용과 광고 사이의 경계를 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것은 뉴스 보도가 광고 문제로 영향받을 수 있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앤드류 랭호프’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언론종사자들도 웬만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런 그가 갑자기 뉴스의 인물이 됐다. 적어도 언론종사자들에게는 그렇다. 그가 현지시각으로 지난 11일 유명 언론사를 그만 두면서 던진 사임의 변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앤드류 랭호프는 불법 도청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의 <월스트리트 저널> 유럽판 발행인이다. 그는 돌연 사직하면서 동료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이 신문이 보도 내용과 광고 사이의 경계를 넘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영국의 진보지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랭호프는 “광고 문제와 우리가 생산하는 내용 사이에는 신성한 경계가 있고, 있어야 한다”며 “<월스트리트 저널> 유럽판과 한 컨설팅 회사 사이에서 이런 경계가 무너진 것은 내게 커다란 걱정이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이것은 뉴스 보도가 광고 문제로 영향받을 수 있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그만두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길”이라고 말했다.

광고는 정보이기도 하지만 언론의 물적 토대를 이룬다. 광고수입은 거의 모든 언론매체의 주 수입원이다. 특히 방송은 절대 수입원이다. 따라서 광고와 편집은 편집기준이나 윤리기준을 경계로 서로 존재감을 존중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준이 쏠리면 균형을 잃게 된다. 매체로써의 언론과 기업으로써의 언론이라는 두 측면을 가진 언론은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

종합편성 채널들이 연말이면 일제히 방송에 들어간다. 조선·중앙·동아·매경 등 언론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대형 중앙지들이 매머드급 방송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은 일반 지상파 방송과 보도, 연예, 오락, 교양 등에서 프로그램 편성이 똑같다. 종편은 지상파와 같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단지 전파를 사용하는 것과 케이블을 활용해 방송을 내보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들 인쇄매체의 방송시장 진입은 기존의 방송미디어 생태계에 미증유의 변동을 일으키고 방송시장 및 시청자 구조를 완전히 재편할 것으로 분석된다. 유사한 논조를 가진 이들의 방송시장 진입은 여론의 다양성 확대 기여라는 점에서는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이들 종편채널들이 생존할 수 있는 물적 토대의 확보 방법이다. 방송은 거의 모든 수입원을 광고에 의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방송사의 광고 수주는 방송사가 직접 영업을 하지 않고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배분에 의지하는 간접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등 중소 방송사 경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4개 종편의 생존에 필수적인 광고수입은 연 1조2천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1조원이 넘는 막대한 광고비가 갑자기 바다 한 가운데서 솟아나지 않는 한 기존 광고시장에서 끌어가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지상파 3사의 광고수입 격감을 의미할 뿐 아니라 지역방송 등 중소 방송사의 생존을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국회에서 방송광고공사처럼 광고대행을 하는 미디어렙 설립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어 이들 종편들의 직접 영업을 조장하고 있다. 이는 지상파 방송과 똑같은 기능과 언론 영향력을 가진 종편 채널들이 광고주와 직거래 영업을 통해 광고수입을 조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필연적으로 광고와 보도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방송광고 직거래는 방송이 광고를 강매하거나, 기사와 프로그램으로 광고주를 협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4개 거대 종편의 시장진입은 직접적으로는 기존의 방송에 큰 영향을 주겠지만, 더 큰 문제는 인쇄매체에까지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영세한 지방의 인쇄매체들은 아직 이에 대한 대책이 없는 듯 하다. 지방신문에서 인쇄매체의 생존을 위한 공론화 기사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거대 종편 출범의 약탈적 광고 직거래를 막기 위해 국회의 미디어렙법 제정을 촉구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랭호프가 사임하면서 새삼 화두로 꺼낸 보도와 광고의 경계는 진리와 같은 윤리기준인데도 말이다. 이미 보도와 광고의 경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스스로 자멸하는 길로 가는 것 아닌가?

/손규성 부사장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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