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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아귀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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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4.10 15: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탐욕스러운 자가 죽으면, 배는 산처럼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처럼 좁은 아귀가 돼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다고 한다. 교육자이기에 목소리를 낮추어야 하고 객관적이어야 하고 공평한 자세를 취해야 하기에 흔들리는 세월에 취하는 척했는데 참으로 한심스러운 정치판이다. 아귀의 세상인 것 같다. 유독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지긋지긋한 당파싸움이 백성들을 힘들게 하였고 나라의 미래를 망쳤다. 정권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벌써 조선 중기를 방불케 하는 당파싸움의 미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정치란 정의롭다고 믿은 세력이 집권해도 그 또한 부패하고 다른 쪽에선 정의롭지 않으며. 그들만의 기득권 카르텔을 만드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불완전하기에 사람이다. 서로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그래서 ‘사람 人’일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중용하며 견제하고 탕평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을 것이며 후손들에게 그저 부끄러운 조상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죄다 삼킬 듯 못생긴 놈, 없어 못 먹는 맛있는 놈 아귀의 두 얼굴이 공존하는 아귀의 세상이다. 그러기에 매력덩어리 세상이고 희망이 있는 세상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대학 생활의 적응은 참으로 힘들었다. 한때는 천사 같은 학생들이랑 함께하는 공간을 상상했으며 설렘이 있었고 지성의 집단에 일원이 될 것이라는 두근거림에는 밤잠을 뒤척이는 순수함도 존재하였었다. 하지만 현실은 하도 못 생겨서 예전엔 잡자마자 재수 없다며 던져버려 ‘물텀벙’아귀의 세상이 내가 경험한 대학의 벌거벗은 현실이었다.

아귀는 큰 입을 이용해 잽싸게 먹이를 삼켜버린다. 또한 아귀는 먹이를 한번 물면 절대로 놔두지 않는다고 한다. 아귀의 배 속에는 통째로 삼킨 고급어가 들어 있는 수가 있는데 이 때문에 ‘아구 먹고 가자미 먹고’ 하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아귀의 영어식 표현인 ‘멍크 피시’는 아귀가 마치 황갈색 로브를 입은 수도승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엄밀하게 ‘멍크 피시’는 영국식 표현이고 미국에서는 낚시하는 생선이란 뜻의 ‘앵글러 피시’로 불린다.

아귀의 다른 의미는 ‘물건 따위의 갈라진 곳’을 말하는데 ‘손아귀’는 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이 갈라진 사이로 ‘아귀가 진 나뭇가지’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아귀가 맞다’ 는 말은 서로 갈라진 곳이 들어맞아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계절의 순환을 ‘아귀가 맞다’란 말로 표현하고 싶다. 벚꽃이 어느 틈인가 머리 희끈한 내 이마 위로 눈꽃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어김없이 앞뒤 빈틈없이 4월의 계절에 딱 들어맞게 자리한다.

우리 몸의 천골과 장골도 아귀가 맞아야 정상적인 골반이 되고 아귀가 안 맞으면 틀어진다. 또한 척추도 각 척추 사이의 아귀가 맞아야 정상이 된다. 이렇듯 모든 관절은 아귀가 잘 맞아야 건강한 체형을 유지하게 된다. 세상의 이치도 이와 같다. 책상과 책상의 서랍이 아귀가 안 맞으면 서랍은 중간에 껴서 움직이지 않거나 삐걱거리게 된다. 삐걱거린 채로 계속 서랍을 여닫으면, 점점 마모되어서 결국에는 책상이 망가지고 말 것이다. 우리들의 엄살과 내숭은 아귀가 딱 맞다. 그러므로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다툼 없는 각자의 자리에서 신비로운 사람으로 존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구에선 아귀를 ‘가난한 자의 랍스터’라고도 부른다. 그 이유는 다른 생선에 비해 식감이 탱탱하고 잘 부스러지지 않아 랍스터의 식감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귀는 랍스터보다 저렴한데도 비슷한 식감을 내니 서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고 요리사들에게는 행복한 식자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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