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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군, 독립유공자 지정해야”

8·15 광복절 앞두고 정선원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 서훈 국민연대 상임대표 주장…법률안은 국회서 계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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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8.11 13:01
  • 기자명 By. 정종순 기자
▲ 2021년 11월 우금티 추모 예술제. 오른쪽 아래는 정선원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면사업회 이사장

[충청신문=공주] 정종순 기자 = 동학농민혁명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위한 노력이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광복 77주년을 맞는 올해도 뜻 있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잇따라 나왔다.

정선원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11일 충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학농민혁명은 일제에 항거한 민초들의 처절한 싸움이었다”며 “일제의 최신식 무기 앞에서 맨몸으로 뛰어 들었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국민연대 상임대표도 “국민이 주인이 된 나라를 만들려던 동학의 정신은 민주주의와 닿아있고, 외부 침략자들에게서 나라를 지키려는 민중의 결단이었다”며 “광복 77주년을 맞아 순국 선열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과 서 상임대표는 그러면서 “동학농민군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는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박 상임대표는 지난해 발간한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을 통해서도 "아직 대한민국은 양반의 나라인가. 독립유공 서훈에서 항일 농민은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1월 차별없는 인간해방을 꿈꾸는 민중들이 조선 전역에서 일제히 봉기하며 촉발됐다. 봉기는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이어지며 일본의 대륙 진출 기회가 됐다.

같은해 11월 공주 우금티에서는 1만여 명의 농민군 중 500여 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공주에서는 농민들과 함께 공주창의소 의병대장 이유상 및 공주접주 장준환이 함께 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동학농민혁명을 1,2차로 나누어 평가한다. 1차가 ‘반봉건’적이라면 2차는 ‘항일운동’이라는 점에 차이를 둔다. 우금티 전투 역시 2차 항일운동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군의 우금티 전투를 진두지휘한 전봉준이나 2차 동학농민혁명의 거봉인 최시형마저 아직까지 독립유공자에 서훈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2차 동학농민혁명(1894)과 을미의병(1895)이 똑같이 항일무장투쟁으로 전개됐음에도 을미의병만 독립유공자로 서훈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의에 동학농민혁명군을 포함하는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올해 4월 발의돼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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