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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호랑이 해를 보내며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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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12.26 16: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최혜진 목원대 교수

올해는 임인년 호랑이 해였다. 세월이 화살처럼 흘러 벌써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올해도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았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러 면에서 안타까운 일들도 많았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어 임기를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온 국민이 비통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경제적으로는 인플레이션 고공 행진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환율은 오르며 이자는 급등하고 있는 최근의 추세를 들 수 있겠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새로운 선거에 대한 기대감과 코로나 안정 등에 대한 희망으로 여러 문제 상황에 대해 안이하게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반성을 해본다. 필자는 올해 초 ‘호랑이 해의 염원’이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민속적으로 호랑이에 대한 여러 인식들이 있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팥죽과 할머니 설화를 이야기하면서 ‘호환’과 같은 국가 재난이 일어난다면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는 국가의 재난이 없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이러한 염원을 굳이 강조했던 것은 그간 우리의 삶이 국가의 제도나 지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서민들 개인의 지혜와 경험에 의해 영위되었던 역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정을 팥죽과 할머니 설화로 이야기했다. 호랑이는 알밤에게 눈을 얻어맞고, 자라에게 코를 물린 후 개똥에 미끄러지더니, 송곳에 찔린 후 맷돌에 맞아 죽는다. 멍석이 호랑이를 둘둘 말아놓으니 지게는 호랑이를 지고 깊은 강 속에 던져버렸다. 할머니 곁의 하찮은 사물이나 동물들이 모두 힘을 합해 최고 포식자 호랑이를 물리친 것이다. 호랑이는 용맹과 권력, 강자의 상징이지만 그런 만큼 약자들을 누르고 착취한다는 상징 역시 나타내고 있다.

민속적으로 보았을 때 산신제에서 빠지지 않는 것도 호랑이다. 마을 뒷산의 산신각에 모신 신은 산신과 호랑이 세트인 경우가 많다. 호랑이는 산 속에서 모든 동물의 왕이 됨은 물론 인간에게까지 해를 끼치기 때문에 인간을 잘 보살펴달라는 의도로 산신으로 추앙해서 모신다. 하지만 이야기 속 호랑이는 항시 어린이, 할머니, 약자, 토끼 등을 통해 골탕먹고 혼나기 일쑤이다. 우리 민초들은 무서운 호랑이를 산신으로 모시면서도 통쾌하게 혼내주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이다.

수궁가 속 저 유명한 ‘범내려 온다’ 대목 역시 물색 모르고 허세를 부리며 내려온 호랑이가 자라에게 혼이 나 압록강까지 불이 나게 도망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곧 호랑이는 용맹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호랑이는 자신의 힘을 믿고 과감하게, 때로는 결단력 있게 일을 처리하지만, 독단과 아집에 빠져있기 마련이다. 단군신화 속 호랑이가 인간되기 100일 수련을 견디지 못한 것도 결국 이성적인 인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가 권력자로 비유되는 것은 흔한 일인데, 그것은 폭력이나 자본, 권력의 힘을 바탕으로 호랑이가 행동하기 때문이다. 호랑이에게 이성이나 배려, 윤리, 자비 등을 기대할 수 없다. 호랑이는 사려깊지 못하고 생각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잡아먹을 수 있어도, 어린 오누이의 지혜에는 당하지 못해 죽음을 당하는 매우 어리석은 면모를 지녔다. 곶감이 무서워 어린 아이를 이기지도 못한다. 하지만 가끔 효자, 효부에게 감동하기도 하고, <호질>에서처럼 잡아먹은 인간귀를 등에 업고 위선적이고 세속적인 인간들을 혼내주기도 한다.

올해 일어난 국가 재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작게는 산불로부터 홍수, 크게는 이태원 참사까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영원한 상처가 남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러한 재난은 국가가 미리 예방하면 얼마든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 대다수였다. 호랑이가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산신으로 때로는 뒷담화로 살아 있어야 한다. 산신으로 대접만 받으려 했다가는 알밤에게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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