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집’-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공연히 조그만 흠을 들추어내어 불평을 하거나 말썽을 부림. 또는 그 불평이나 말썽’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하여 생각할 점은 ‘공연(空然)히’라는 말이다. 아무 까닭이나 실속이 없게, 즉 괜히 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상대방을 괜히 건드리고 흠을 들추어 내어 말썽을 부리기 위해서 한다는 말이다.
‘트집’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물건을 살 때, 가격을 깎아내리기 위해 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옷 같은 경우 박음질이 잘못 되었다, 무늬가 맞지 않는다, 시침질이 잘못됐다는 등으로 트집을 잡아 값을 깎아 내리면서 흥정을 한다. 그러면서 서로가 적당하게 인정하고 가격을 협상하여 물건을 사고 판다, 거래가 이루어지면 서로 웃으며 잘 가라고, 많이 팔라고 인사를 한다. 이런 트집 잡기는 서로가 즐거운 결과를 나아 기분을 흐믓하게 만든다. 즉, 조그만 흠을 들추어 내어 불평하는 트집이다. 웃을 수 있는 트집이다.
트집 중에는 생(生)트집이 있고 감정을 상하는 경우도 있다. ‘생트집은 아무 까닭이 없이 트집을 잡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트집 잡을 것이 없는데 트집을 잡는다는 말이다. 혹 트집이라 해도 구태여 트집 잡을 정도가 아닌데도 하는 행동을 할 때 쓰는 말이다. 정치권 뉴스에 등장하는 말 중에 “트집 잡는다”라는 말이 곧 잘 나온다. 또한 “아니면 말고”라는 말도 있다. 트집을 잡았으나 별것 아니고, 생트집이 되었을 경우 평가되는 말이다. 기면 좋고 아니면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 국민들은 정치판을 외면하기도 한다. 페이스북 이라는 SNS에는 ‘국회의원 정원 숫자 줄이기, 세비 깎기 등에 찬성하면 아래의 ☞를 누르시오’라는 글이 가끔 등장한다. 참여자 수도 만만치 않다. 왜 그렇까? 하고 생각해 본다.
트집 잡기가 반복되면 속된 말로 ‘찍히게’된다. 음식점에 가기만 하면 트집을 잡는 필자의 친지가 하나 있다. “김치가 맵다”, “음식이 너무 짜다”, “맛이 없다”, “고기가 질기다”, “살이 너무 없다”, 심지어는 “물이 왜 self야?”라고까지 한다. 나름대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에서 그러면 밥맛이 싹 떨어진다. 그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그 사람이 있으면 모두들 식사하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집으로 가는 척 눈치를 보다가 그 사람을 빼고 끼리끼리 모여 식당엘 가기도 한다.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해치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친지들이 없다. 나이 들어 살면서 한 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다. 안되겠다 싶어 “앞으로 음식 먹을 때 맛 없다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건의하니 “내 생각도 자유롭게 말도 못하느냐?”고 오히려 또 트집을 잡기에 아예 말 상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고, 자신의 생각만이 바르다고 우기기 전에 모든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피며 이야기하면 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니 아집(我執)에 빠져 들어 더 큰 과실을 범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서툰 목수 연장을 탓한다’는 말이 있다. 핑계를 남에게 돌리는 말이다. 그래서 순자(荀子: 성악설 주장)는 영욕(榮辱)편에서 自知者不怨人 知命者不怨天(‘자기를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이라고 했다. 인격이 수양되었다는 것은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남에 대한 트집을 잡지 않는 것이다.
John G Miller는 개인의 책임을 기업이나 개인의 핵심 가치로 만드는 일에 전념하는 조직 개발 전문 기업 QBQ Inc.의 창립자이다. 『바보들은 항상 남의 탓만 한다(QBQ! The Question Behind the Question)』라는 책에서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의 책임 의식이 없음을 지적한다. 남탓하지 말고 남 트집 잡지 말고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