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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머니의 기일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문학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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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3.20 13: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문학심리상담사
사방이 오색빛 꽃으로 에워싸인 봄이다. 동백꽃, 매화, 목련, 개나리, 벚꽃 등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들의 화려한 향연에 기쁨과 설렘보다는 애잔한 아픔이 살살 밀려온다. 이토록 곱디고운 꽃들을 뒤로 한 채 어머니가 먼 소풍 길을 떠나신 계절이 바로 봄이기 때문이다. 평소 꽃을 너무 좋아하셔서 집 베란다에는 다양한 화분이 가득 자리를 잡고 있었고, 꽃에 물을 줄 때의 미소 띤 어머니 모습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셨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봄꽃의 화사함이 극치에 달하던 4월 중순에 길고도 먼 여행을 급하게 떠나셨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계절에 우리와의 이별을 선택해야만 했던 어머니의 외로움이 마음 속 깊이 느껴져서 지금 이 순간 까지도 우리 가족을 무겁고 숙연하게 만든다. 벚꽃과 철쭉꽃 향기에 둘러싸인 전망 좋은 선산에 자리 잡으신 어머니를 자식들이 거주하는 곳 가까이에 모셨으면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마다 자주 찾아 뵐 수 있을텐데, 선산이 위치한 홍성까지의 거리가 가깝지 않다보니 우리 마음과 행동이 따로따로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이별의 아픔은 점점 희미해진다”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그러나 부모와의 이별은 예외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지고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에 가끔 무기력함을 느낄 때도 있다. 순간순간 어머니 생각이 고개를 주욱 내밀 때면 대체로 이성적인 나 자신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매화향기로 가득한 봄이 하얀 햇살과 함께 우리를 방문할 때면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도 먹고 싶고, “막내야” 라고 부르시던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도 무지무지 그립다. 가끔 힘겨운 걸음으로 지나가는 할머니를 보게 되면 마치 어머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가까이 다가가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가, 어머니가 아님을 확인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의 고독사나 사고사, 또는 학교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 등 가슴 아픈 소식을 종종 뉴스로 접하게 된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나도 외로웠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주위의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하게 보듬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 세상에 그 누구도 완벽한 행복을 누릴 수 는 없다. 나름대로 삶의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모두들 잘 견디고 있는 것이다.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죽기보다 힘들지는 않다”는 말의 의미는 죽는 것 보다는 살아있음이 다행이고 그나마 덜 힘들다는 뜻이다. “천상에서는 모든 것이 행복이고, 지옥에서는 모든 것이 슬픔이다” 라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다.

어머니와의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런 이별은 평범한 우리네 삶의 지금 이순간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지를 절감하는 값진 교훈을 주었다. 열심히 살아온 삶의 연속선 끝에 죽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삶과 죽음은 별개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서 서로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이별을 경험해본 사람은 절실하게 알기 때문에, 고귀한 삶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오늘도 뭔가 큰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행운은 쉽게 얻을 수도 있지만 순식간에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사랑하는 가족과 오늘의 소중함을 절대로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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