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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회초리

허영희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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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4.16 12: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벌로 아이를 때릴 때나 마소를 부릴 때 쓰는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회초리라고 하는데 요사이 우리 사회를 살펴보며 회초리 맞을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생을 살면서 제일 하기 힘든 상황이 자기 자신에게 냉혹한 기준을 설정하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것인데 대부분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목을 담당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월마다 치는 국어시험 결과에 따라 우리들의 손바닥을 틀린 개수대로 회초리로 두들겨 패셨다. 어린 마음에 담당 교과목 선생님이 비인격자처럼 보였고 무섭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지만 분명한 차이점은 다른 교과목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았고 공부도 많이 하였다. 회초리 숫자가 틀린 개수다 보니 친구들 앞에서 들통나는 게 창피하였고 어린 마음에 한국 사람이 국어를 못 하면 국적을 반납해야 하나 두려운 생각에 더 열심히 공부하였다.

원래 회초리는 잘못된 행동이나 행위를 교정하는 사랑의 매였다고 한다. 그리고 회초리를 학자수인 회화나무 가지로 만들어 종아리를 치는 것은 큰 인물이 되라는 뜻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로 불리었는데 회화나무를 심으면 그 동네에서 큰 학자가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회화나무가 꽃 피는 음력 7월경에 과거를 치렀는데 이 시기를 ‘괴추(槐秋)’라고 불렀고, 우리나라도 과거시험을 치러 가거나 합격을 했을 경우 집안에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회화나무의 가지를 잘라 만든 것이 ‘회초리’이다.​ 우리 조상들은 회초리를 교육의 으뜸 도구로 사용하였고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회초리를 치는 것은 물론, 지어미가 지아비가 공부를 게을리했을 때도 회초리를 들었다고 한다.

옛날 어사 박문수도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었다. 함경도 지역을 감사하던 중 날이 저물고 길을 잃어 마침 불빛이 비치는 곳이 있어 그곳을 찾아갔는데 마침 여인이 혼자 사는 집이었다. 저녁을 얻어먹고 잠자리에 들어 수작을 부렸는데 그만 임자를 잘못 만났다. 여인네가 박문수를 일으켜 종아리를 치며 ‘못된 버릇을 갖고 있구나.’ 하며 종아리를 얼마나 세게 치는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네 조상들은 대나무로 회초리를 하면 아이가 살이 빠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으며, 복숭아나무 가지로도 회초리를 만들지 않았는데 복숭아나무 회초리로 자식을 치면 자식이 미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회초리는 반드시 비단에 싸서 장롱의 맨바닥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회초리를 비단에 쌌다는 것은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도구를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훈육할 일이 생겼을 때는 반드시 건넌방 장롱으로 가면서 감정을 조절했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장롱 밑에 깊이 놓인 회초리를 꺼내면서 또 한 번 감정을 조절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회초리이다.

요사이 사회의 이슈 중 가장 ‘핫(hot)’한 것이 정치인들의 사회적 폭력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매’는 인정되어야 한다. 모든 체벌은 일절 금지되어야 하나. 지금은 국민이 회초리를 만들어 국민의 혈세로 호의호식하는 모든 정치인에게 어떤 방법이든 회초리를 들어야 하고 사회적 분위기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회초리를 맞는 이유를 이제는 그들에게 제대로 알게 하여 작금의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만들어 가는 ‘국민의 회초리’를 주어야 한다. 직접 치지 않아도 닿는 부위에 갖다 대기만 하거나 허공에 그냥 휘두르거나 바닥을 탕탕 치거나 회초리를 가지러 가는 척만 해도 실제로 회초리로 벌 받은 것처럼 공포와 함께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국민이 정치인들을 제대로 훈육해야 하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때가 온 것 같다.

회초리가 부러지는 것은 사회적 절망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실 회초리를 드는 삶보다 칭찬을 많이 하고 사는 삶이 더 쉽고 행복하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명한 선택이란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을 놓아줄 수 있는 마음인데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얻는 것임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하는데 모두 그리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숙연해진다고 한다. 인생 그리 길지도 않고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데, 어리석은 역할에 많은 사람이 익숙해져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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