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공주시, 이달의 역사 인물 ‘이복’

하늘이 내린 고려시대 공주의 효자 이복 선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3.05.01 11:55
  • 기자명 By. 정영순 기자
▲ 5월의 역사 인물 ‘효자 이복’ 리플렛.(공주시 제공)
[충청신문=공주] 정영순 기자 = 공주시는 고려시대 공주의 향리이자 대표적인 효자였던 이복을 5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이복 선생은 옥룡동 비선거리 마을(현재 충남역사박물관 인근)에 살았다고 전해지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공산지(公山誌)’ 등에서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효행은 여러 이야기로 설화처럼 전해지는데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이복은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집 일을 해주면서 어머니를 봉양했다고 한다.

어느 해 겨울, 어머니께 드릴 밥과 국을 얻어 오다 빙판에 엎어버린 이복은 주저앉아 서럽게 통곡하였는데, ‘갱경(羹傾)골’ 이라고도 불리는 지금의 국고개가 바로 그 자리라고 한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이복은 얼어붙은 금강으로 가서 얼음을 깨고 큰 잉어를 잡아 어머니께 올렸다. 여러 약을 써도 효험을 보지 못했던 어머니는 금세 건강을 회복하여 오래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지자 나라에서는 ‘효자 이복이 사는 마을’ 이라는 뜻의 ‘효자이복지리(孝子李福之里)’ 비석을 세워 표창했다.

공주의 중요한 효행 상징물이었던 이복의 효자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모습을 잃게 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1978년 공주시 옥룡동에 ‘신 행적비’를 건립했다.

1979년에는 비각을 새로 지어 ‘효자이복지리’ 비석을 나란히 세웠다. 해당 비석은 공주 국고개 효심공원에 남아있다.

남윤선 문화재과장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효자 이복의 삶을 기리기 위해 5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며 “5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이복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