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중학교 동창생이 찾아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것이니 40여 년을 훌쩍 넘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니 그저 담담했다. 별명이 ‘찰란이’ 였던 내가 어떻게 살아왔을까 궁금했다고 한다. 가끔 나를 떠올리면 무슨 일이든지 하고 있으리라 생각해서 인터넷에서 이름을 검색했다고 했다. 그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우며 그 시절로 돌아간 탓인지 고향의 이곳저것이 떠올랐다.
요즘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라는 하재영 작가의 작품을 읽고 ‘찰란이’ 라는 별명과 내 삶을 뒤돌아보는 중이기도 했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제목의 의미는 어머니의 원형에서 벗어나 모성의 절대성으로부터 자기정체성과 대결하는 어머니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어머니가 원하는 삶, 즉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는 편견을 가진 담론을 거부하기에 어머니의 뜻대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자기안의 ‘여성적 힘’을 선포한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의 어머니와 나의 엄마가 너무 비슷해서 작가에게 전이되어 이 책을 읽었다. ‘찰란이’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나는 엄마가 보면 엄청 나대는 아이여서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 조신해야 한다” 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러나 학교에 오면 뭐이든 자신 있었다. 공부도, 노래도, 그림도, 글쓰기도 그러기에 뭐든 하는 아이었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6학년 때도 전교어린이 부회장을 했었다. 전교어린이회장은 남학생만 출마하는 것이라 나는 하고 싶어도 못했다. 왜 어린이회장은 남자만 나갔는지 ‘그 시대는 그랬다’라는 말로 대신 한다는 것이 슬프다. 친구들이 나에게 잘났다고 붙여준 별명이 찰란이었다. ‘잘난 아이’의 줄임말로 찰란이라 놀렸다.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의 일관된 말씀은 여자는~ 으로 시작하는 말이었다. 나는 왜 엄마가 나에게 그랬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짐작 할 수 있다. 이 책의 작가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엄마의 말을 듣고 ‘니가 여자니까’ 그렇게 교육 했으며 이제 와서 생각하니 ‘미안하다’라는 말을 듣는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 대목에서는 마치 내가 엄마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우리 엄마도 살아계셨다면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다. 그 시대 엄마들이 생각하는 여자의 삶은 원만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나 또한 글을 쓰는 것은 늘 자아성찰과 연결되었던 것 같다. 내가 펴낸 두 권의 수필집이 ‘내적인 허물벗기’였다. 할머니, 엄마, 아버지까지 그 분들과의 관계를 숙제를 하듯 풀어내고 ‘나 다움’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들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조금씩 사회의 현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세 번째 수필집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은 들어있다. 글을 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기도하다.
중학교 동창 친구는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갔지만 언제 또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기온이 26도까지 올라간다는 날씨예보다. 오후에는 한 번 더 작약 꽃밭으로 가봐야겠다. 꽃이 활짝 폈으면 문우들 한데 전화를 하리라. 꽃구경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