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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어디에도 있는 깨달음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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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11.20 13: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음성에 첫눈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설레었는데 기차에서 본 남녘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김장배추가 아직 밭에서 자라고 있고 푸른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마치 다음 계절이 겨울이 아닌 봄이 올 것 같은 모습니다. 옆 좌석의 젊은 남자는 코트를 뒤집어쓰고 가늘게 코를 곤다. 옆 좌석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좋다. 건너편에 앉은 두 여인이 나누는 두런두런 이야기도 정겹고 앞좌석에서 풍겨오는 커피향도 기분 좋게 한다.

결혼식 두 개가 겹쳤다. 하나는 경주이고 다른 하나는 부평이다. 고민하다가 금요일 미리 울산에 내려와서 대학원 동기들과 1박하고 혼주 얼굴보고 토요일은 부평 친구 결혼식을 보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대학원 친구들이 특별한 집이라며 점심 예약을 해 두었다. 겉은 너무 초라한 옛날 건물이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아담한 마당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또 다른 반전은 집안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 고급 그릇이었는데 빌라 한 채 값은 된단다.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식사 예약은 하루에 한 팀만 받는다는 주인장은 정성껏, 맘껏 꾸민 음식을 차례로 내어왔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정원에는 아직 지지 않은 단풍과 국화까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운치를 더했다. 식사가 끝나고 보이차를 내 온 주인은 다도와 그림을 그리면서 산다며 자신의 삶의 철학을 풀어냈다. 누구나 흉내 낼 수 없는 또한 짧은 시간에 될 수 없는 그 분만의 이야기는 같은 나이 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생각을 하게 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혼주가 살고 있는 경주에 한옥을 예약해 두었다고 해서 이동했다. 오랜만에 만나도 즐거운 친구들 배려와 존중이 있어 개성 강한 4명이 8년을 이어오고 있다. 좋은 만남의 조건은 마음에 거리 조정이 가능해야 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너무 가까이 있어 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 약점이 되는 경우도 있고 너무 멀리 있으면 그 관계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주 친한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 연락이 되어 잔뜩 기대를 하며 만나도 몇 번의 만남 후 다시 뜸해져 버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물리적 거리를 배려와 존중으로 풀어내는 이 모임을 좋아한다.

다시 KTX를 탔다. 경주에서 광명으로 가는 열차이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못 잔 탓인지 잠깐 졸았다가 깨니 열차가 서행을 하고 있다. 대전역에 17분 늦게 도착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철로 이상으로 그런다는데 조바심이 났다. 1시까지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2시에 결혼식을 보자고 지인들과 약속을 했다. 앞으로도 2개의 역을 더 가야 하는데 기차는 계속 서행을 하고 시간은 자꾸 멀어졌다. 그러다가 ‘그래 중요한 것은 결혼식이니 그 시간에 맞추기만 하면 되고, 지인에게 전화해서 밥 먼저 먹으라고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 했더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택시 기사님도 밀리는 구간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를 포기했고, 결혼식 시간은 충분했기에 조바심은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하나를 내려놓으니 이렇게 편안해 지는 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결국 힘들다는 생각과 바쁘다고 종종걸음 했던 것은 나의 우선순위를 정했기 못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번 결혼식도 하나만 선택했다면 다음 주 일정에 내 몸이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원 친구들을 만나서 즐겁고 행복했지만 말이다.

나는 두 개의 일정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 서운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까 염려로 인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문득 “다른 사람의 기대나 평가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인정에 따른 행동을 하지 말라”며 미움 받을 용기도 필요하다는, 언젠가 읽었던 책 내용을 여기에도 적용시켜 본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려놓으면 편안하다는 진리를 일상에서 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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