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아침을 여는 詩] 어떤 방생放生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4.10.07 19:28
  • 기자명 By. 충청신문

어떤 방생放生

 

길상호

 

바람의 물결 차가워지면서 나무는

잎들 쥐고 있던 손아귀 힘을 풀었다

풍경風磬 같은 잎이 지느러미 움직이는 순간

한 무리의 맑은 소리도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멈칫하던 잎들은

나무가 제 몸에 그려 놓은 길을 읽으며

방향키를 잡았다 처음 가는 낯선 길

속에 차이고 무게에 밟혀 눈을 감으면

생각의 회오리에 휩싸이는 놈도 있었다

그때 단풍으로 빛나던 비늘 몇 개 벗겨지고

아픈 몸으로 뒤척이기도 했지만

바람에 역행하여 헤엄치는 놈은 없었다

이 모습을 나무는 멀리 서서 바라볼 뿐

어떤 표정도 만들지 않았다 가만 보니

거기 서 있는 나무 역시 물고기였다

물빛으로 지은 비늘 하나씩 뜯어내며

나무는 계절의 마지막 여울을 통과해

윤회의 고리 한 바퀴 맺고 있었다

비늘이 떠나 버린 나무의 등뼈 깊숙이

주름으로 조용한 경전이 새겨지고 있었다

 

시평)낙엽이 지는 것을 ‘방생’으로 읽어내는 시인의 눈은 참으로 섬세하면서도 깊이까지 갖췄습니다. 낙엽은 제 몸에 그려 넣은 길을 따라 바람의 안내를 받으며 어딘가로 흘러갑니다. 그런 낙엽을 바라보고 있던 나무 역시 자신이 물고기였음을 알고 “계절의 마지막 여울을 통과해/ 윤회의 고리 한 바퀴” 맺고 있습니다. 낙엽과 나무 그리고 나이테까지 참으로 참신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 가을에 딱 맞는 시편입니다. (조용숙/시인)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