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생放生
길상호
바람의 물결 차가워지면서 나무는
잎들 쥐고 있던 손아귀 힘을 풀었다
풍경風磬 같은 잎이 지느러미 움직이는 순간
한 무리의 맑은 소리도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멈칫하던 잎들은
나무가 제 몸에 그려 놓은 길을 읽으며
방향키를 잡았다 처음 가는 낯선 길
속에 차이고 무게에 밟혀 눈을 감으면
생각의 회오리에 휩싸이는 놈도 있었다
그때 단풍으로 빛나던 비늘 몇 개 벗겨지고
아픈 몸으로 뒤척이기도 했지만
바람에 역행하여 헤엄치는 놈은 없었다
이 모습을 나무는 멀리 서서 바라볼 뿐
어떤 표정도 만들지 않았다 가만 보니
거기 서 있는 나무 역시 물고기였다
물빛으로 지은 비늘 하나씩 뜯어내며
나무는 계절의 마지막 여울을 통과해
윤회의 고리 한 바퀴 맺고 있었다
비늘이 떠나 버린 나무의 등뼈 깊숙이
주름으로 조용한 경전이 새겨지고 있었다
시평)낙엽이 지는 것을 ‘방생’으로 읽어내는 시인의 눈은 참으로 섬세하면서도 깊이까지 갖췄습니다. 낙엽은 제 몸에 그려 넣은 길을 따라 바람의 안내를 받으며 어딘가로 흘러갑니다. 그런 낙엽을 바라보고 있던 나무 역시 자신이 물고기였음을 알고 “계절의 마지막 여울을 통과해/ 윤회의 고리 한 바퀴” 맺고 있습니다. 낙엽과 나무 그리고 나이테까지 참으로 참신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 가을에 딱 맞는 시편입니다. (조용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