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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뒷모습

“앞모습은 또 너나없이 비슷하되 천이면 천사람 모두 달리 표현되는 뒷모습은 자기만의 범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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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0.07 19: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대형 오케스트라 앞에서 그는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긴장해 있었다. 리듬이 빨라지면 그의 손도 바람 앞의 나뭇잎처럼 격하게 움직였다. 감미로운 선율이 나오면 꽃잎처럼 덩달아 나긋나긋해진다. 경쾌한 가락과 함께 지휘봉은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바뀌고 장중한 곡에서는 바위 같은 침묵을 이끌어낸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엄숙한 분위기를 깨고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는 순간 등 돌려 인사하는 모습이 그렇게 경건할 수가 없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듯한 감동이 속속 파고들었다.

음악회가 끝난 후 저수지를 가다가 물가를 배회하는 사람을 보았다. 언덕을 배경으로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거기 바바리 깃을 세운 한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전혀 모를 사람인데도 낯설기는커녕 버스에서 내려 가을의 한 자락을 잡고 싶을 정도로 친근해 보였다. 십리길 저수지가 끝나도록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던 모습 때문이다.

잡을 수 없는 계절의 여름에서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실직을 했거나 혹은 가정불화를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 것도 같지만 더 이상은 비약하지 않기로 했다. 음악회를 조율하던 얼마 전의 그 지휘자도 떠올랐다. 그 때 그 지휘자는 멋있었다는 기억밖에 없는데 지금 저 외롭게만 보이는 뒷모습은 계절병 때문에 물가를 배회하는 거라고 생각되니 모를 일이다. 일상적인 이유보다는 특별한 계절의 여파로 생각하고 싶어지는 걸 보면 내 마음도 그만치 쓸쓸했던 걸까.

뒷모습에 집착한 것은 그 때부터다. 앞모습이 감정적이라면 뒷모습은 이성적이다. 앞모습은 또 너나없이 비슷하되 천이면 천사람 모두 달리 표현되는 뒷모습은 자기만의 범주다. 표정이 없는 표정으로 말없는 느낌이 전해진다. 빛이 들어간 반그림자처럼 뒷모습 또한 은연중 깃든 슬픔이 아닐까. 드러난다 해도 진정한 게 아니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면 절박한 그 아픔은 쉬 달래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너나없이 앞모습에 신경을 쓴다. 꾸미개나 장식 또한 앞부분에 포인트를 준다. 옷만 해도 지퍼나 리본이 전부지만 보완점도 있을 것 같다. 살아온 흔적이 여일하게 묻어나는 만큼 일시적 치장으로 바뀌지 않는 것도 그 한계다. 앞모습이 외적인 양상이라면 뒷모습은 내적 생활의 근간으로 남는다. 앞모습은 옷이나 화장으로 달라지고 뒷모습은 자기 정진과 성찰로써만 변화를 꾀할 수 있다.

뒷모습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보게 되는 것도 섣불리 손 댈 수 없는 이미지 때문이다. 오랜 날 걸러낸 분위기가 배어 있는 걸 보면 여하한 가식이나 꾸밈도 허용되지 않는 미확인 지대다. 마음으로 투영이 된다는 데서 앞모습이 만든 그림자를 본다. 바닥으로 가라앉는 그릇처럼 우리의 배후도 뒤쪽으로 기울어진다.

운명이라도 지고 갈 중압감은 물론 앞에서 채우지 못한 여백이 비쳐지기도 하지만 숨기고 싶은 치부라도 거리낌 없이 보일 수 있다면 자신을 극복한 사람이다. 앞모습이 미래의 청사진이라면 뒷모습은 지난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눈으로보다는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그 이미지도 무한의 신비를 동반한다.

수많은 청중을 뒤로 하고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지휘자처럼 온갖 곡절에도 의연한 사람이고 싶다. 바람을 맞으며 걷던 사람같이 침묵 일변도인 자기 성찰의 의지를 다지고 싶은 걸까. 누구나 시인이 되고 생각이 많아진다는 가을, 무심코 지나쳐 온 간이역 어디쯤으로 돌아가 떨어진 날을 줍고 싶은 것도 계절의 후유증이라 하겠다.

뒷모습은 그렇게 자기만의 범주다. 앞모습 즉 얼굴과 머리 스타일을 보고 얼핏 착각할 수 있어도 뒷모습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다. 앞모습은 괜찮은데 뒷모습이 별로인 사람은 많지만 뒷모습이 아름다우면 앞모습은 볼 것도 없이 괜찮다는 말도 전혀 별개의 영역인 본체를 드러낸다.

요즈음 나도 뒷모습에 신경이 쓰인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매만져도 부스스할 때가 많다. 습관적으로 뒷거울을 비쳐 보는데 앞모습과는 달리 살풍경하다. 스스로를 봐도 숭해 보여서 감추고 싶을 때가 많으나 거기야말로 우리 고유 영역이다. 아주 잠깐 매료되었던 지휘자의 뒤태에서 답답하고 울적할 때 더 끌리는 속내를 본다. 등 돌리며 떠나는 계절의 뉘앙스처럼 지나온 길을 반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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