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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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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0.15 17: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여행길 휴게소에서 농담이 떴다. 남자는 모름지기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무탈하단다.

세 여자가 누구누구예요? 어머니, 장모, 아내, 처제, 딸, 애인, 간호사, 주모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발제자 육담 왈, “아내 녀, 캐디 녀, 내비 녀”란다. 내비 녀? 내비는 내비게이션(navigation)이다.

그러고 보니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는 여성이었다. 내비게이션 음성은 감정 없는 기계음이다. 얼굴 없는 기계음이 인간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내비 녀! 놀라운 여자다!

내비게이션은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퍼졌다. 내비게이션 없는 차량은 거의 없다. 거치형에서부터 매립형으로 깔끔하고 안전하게 바뀌었다.

MP3, 동영상 플레이어, DMB 기능, TPEG 제공, 별의별 것까지 서비스한다. 보통 영특한 게 아니다. 내비게이션의 진화는 표적을 가리지 않는다. 선명한 3D 영상이 환상적이다.

차 안은 요지경이다. 에어컨, 시계, 충전기, 시가 라이터, 재떨이, 블랙박스, 하이패스 단말기, 핸즈프리, 방송, 스포츠 중계, 음악…… 차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펼쳐 논 아이디어들이다. 내비게이션 사업도 그렇다.

음주운전 동승자까지 처벌합니다. 운전중 휴대폰 사용, 영상물 시청, 흡연을 단속합니다. 신호위반하셨습니다. 안전벨트 미착용하셨습니다. 운전에는 규제와 단속이 많이 따라붙는다.

범칙금, 과태료, 위반위반, 단속단속! 더더더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교통법규위반 하지 않은 운전자가 얼마나 될꼬? 운전문화 뒤통수 조심. 그래서 선거에 떨어진 후보자도 여럿 있다. 내비게이션이 책임져야 할 숙제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 화면 동의하기를 누른다. 실제 교통상황에 따라 운행하세요. 내비 녀와 대화를 한다. 위성항법 시스템, 인공위성 지도를 펼쳐준다.

나는 인공위성과 교감한다. 어린이보호구역입니다, 시속 30킬로미터로 운전하세요. 그래. 알았어. 어린이는 보호해야지. 과속방지턱이 연속됩니다. 덜커덩. 골목길로 들어서자 띵똥띵똥 울려댄다. 경로를 잘못 들어섰습니다. 300미터 앞에서 우회전하세요.

내가 아는 길인데 왜 그러셔? 어지간히 말 안 듣네. 가다가 들를 곳이 있어 방향을 틀면 어김없이 띵똥 거린다. 200미터 앞에서 유턴하세요. 유턴을 참 좋아하시네. 그래, 내 인생도 그때 유턴했으면, 바른 길로 갔을 텐데. 아냐. 바른 길이 아니고 빠른 길이었을 거야. 바른 길은 늦어. 사는 길에 정답은 없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나.

서울은 왜 가지? 왜? 왜? 공사가 많은 신도시 세종시를 가면 도로 표시가 없이 차가 허공을 주행한다. 산을 오르기도 하고 금강 물속을 지나기도 한다. 업그레이드 시켜야 해요. 구버전인 나는 헷갈린다. 그래. 업그레이드 안 시키면 소통이 안 된다. 서로 딴말하고 어긋난다.

내비게이션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간다. 사무실 출근길도, 집 귀갓길도 켠다. 자주 다니는 길마저 나는 길치가 되었다. 그 단호한 명령에 익숙해져 스스로는 경로탐색을 못한다.

사무실, 자택을 입력해 놓고 습관적으로 누른다. 안내 음성이 안 들리면 불안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어김없이 브레이크들을 밟는다.

신기하지. 어떻게 카메라를 알았지? 모두 내비 녀가 알려준 거다. 700미터 앞에 과속단속 장치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띵띵띵띵! 단속 장치와 내비 녀가 짜고 하는 풍경이다.

단속장치를 다 꿰고 있다. 매서운 여자다. 과속 위반에 걸린 적이 있다. 통고서를 내밀며 아내가 거든다. 내비 녀 말 좀 잘 들으세요. 여자 말 들어 손해 볼 거 없어요. 그러게!

굳세게 내비게이션을 달지 않고, 나침판 세워놓고 운전하는 친구가 있다. 남인지 북인지 방향을 모르겠어. 그래도 싫어. 내비게이션은 내비게이션일 뿐이야. 안내를 거부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

스마트 폰에도 내비게이션 앱이 탑재되었다. 수사기관에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을 압수수색했다고 해서 시끄러운 적이 있다. 카톡, 밴드만 엿보는 줄 알았는데, 내비게이션까지 엿보다니.

영장집행이라지만, 내 위치 정보가 나도 모르게 노출되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는 정서가 우세하다. 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가끔씩 소리내는 조문이다.

내비게이션을 네비게이션으로 잘못 적는 경우가 있다. 내비게이션은 우리말로 '길 도우미'로 순화되어 있다. 어눌하지만, 내비게이션은 길 도우미이다.

목적지 주변입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끊임없이 종알대던 길 도우미.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가족과 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이다.

당신의 내비 녀는 참하십니까?

당신은 내비 녀의 말을 잘 듣습니까?

김 정 호 백제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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