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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사건인가 사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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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7.16 19: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요즘 아주 어이없는 기사들을 본다. 아니, 하도 어처구니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는 기사들이다. 한·미 간 주한미군 탄저균 배달사고에 대해 합동실무단을 구성해 합동조사를 한다느니, 한미 SOFA 합동위원회를 개최해 ‘탄저균 배달 사고’를 공식 의제로 상정한다느니 하는 뉴스들 말이다.

따져보자. ‘조사’라 한다면 어떤 일에 대한 내용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자세히 찾아보거나 살펴보는 것인데, 이미 ‘사고’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하니 기가 막힐 수밖에. 단독으로 하든, 합동으로 하든 그런 조사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공식의제로 삼든, 비공식의제로 삼든 그런 의제가 소용이 있느냐는 거다. 전제를 그리 해놓으면 결론도 그리 되는 법이다. 장담하건대, 조사결과는 이미 보도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다.

“탄저균 배송 전 방사선 처리를 통해 ‘불활화’ 조치를 취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돌연변이’가 생긴 것 같다. 아마도 일부 균이 방사선 처리에 내성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일이 생긴데 대해 유감을 표하며 앞으로는 확실한 처리를 해서 불활화 조치를 한 뒤 발송하도록 미국 정부에 요청하겠다. 끝” 그 결과가 이번 주에 나오든, 다음 주에 나오든 안 봐도 비디오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다. 실무노동용어 사전을 보면 사고는 “인간이 어떠한 목적을 수행하려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의지에 반하는 예측불허의 사태로 인하여 인적·물적 손실이 발생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류나 결함 혹은 어떠한 조건 등의 인과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일을 사고라 한다는 것이다.

비의도성과 돌발성, 평면성의 특징을 지닌 이 ‘사고’는 조사 해봐야 “뜻밖에 일어나서 유감”이고 “앞으로 그러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에 방점이 찍힐 뿐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배달 사고’라 규정하고 조사하는 한, 결론도 ‘배달 사고’로 나오는 게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닐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탄저균 샘플이 오산 미 공군기지에 배달된 사고에 대해 주한미군이 당분간 ‘탄저균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고 한다. 또 15일 외교부에서 열린 SOFA 합동위에서는 탄저균 사건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했는데, 미국 쪽 위원장인 테런스 오쇼너시 주한미군 부사령관은 사실관계 파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했다고 한다. 물론 그 흔한 유감표명 따위는 없었단다.

“사고가 생겼으니 그 원인을 물론 알기는 어렵겠지만 알아보려 한다. 사실파악이 되면 알려줄 테니 그리 알고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 그런 연후에 다시 ‘탄저균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게 미군의 생각이고, 이에 우리 정부도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검역주권의 보장이니,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이니 하는 근본적인 얘기는 하나마나한 얘기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엄연한 ‘사건’이다. ‘사건’은 사전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관심을 끌만한 일”이지만 “그 일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꼭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긴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규정되어야 하듯이 이번 일도 ‘배달 사고’가 아니라 ‘미군에 의한 한반도 내의 탄저균 반입 및 실험 사건’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규정이 된다면 조사의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살아있는 균이든 불활균이든 관계없이 언제부터, 어떻게 탄저균이 반입되어 어디에서 얼마만큼 누구를 대상으로 왜 실험을 해왔는지를 조사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일어난 살아있는 탄저균의 ‘배달 사고’는 전체 조사에서 그야말로 극히 일부분이다. 조사의 성격과 규모가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13년부터 주한미군에 의해 ‘주피터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온 것이 확인되고 있다. 우리 땅에 세균을 반입하고 우리 땅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그냥 넘어가는 것은 한나라의 주권을 포기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펄쩍 뛰어야 할 정부가 미군 측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입에 거품을 물어야 할 언론이 ‘배달 사고’라는 정부와 미군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듯 하는 이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사건과 사고는 구별되어야 한다’면서 “사회의 내부적 모순이 드러나면 그것은 사건이고, 일종의 부작용은 사고”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사건인가? 사고인가?”

 

우희창 목원대 광고홍보학과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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