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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작가의 한국어 이야기] 가늠, 가름, 갈음…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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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04 17: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김우영 작가의 우리말 나들이 표지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애매한 말은 거짓말의 시작이다.”

정확하고 바른 표현은 진실의 시작이다. ‘다음 세기에 나타날 자연적 현상은 우리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것인가를 가늠 할 것이다.’ 여기서의 ‘가늠’은 잘못 쓰였다. ‘가름’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또 이 문장은 주부(主部)와 술부(述部)가 잘 호응하지 않는다.

다음 세기에 부여된 ‘자연적 현상’ 자체가 운명을 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 생명을 어떻게 좌우 할 것인가? 를 가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이 맞다.

“다음 세기에 나타날 자연적 현상은 우리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것인가를 가름할 것이다.”

‘가늠’의 뜻은 ‘미리 헤아려 보는 일, 짐작하는 일’을 말한다. 아래의 말이 이에 해당한다.

“근대과학은 수시로 변화하기에 어떤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다”

“어정쩡한 가늠으로 내 운명을 걸기엔 그 일이 어렵다.”

‘가름’은 ‘가르다’의 명사형으로 ‘따로따로 나누는 일, 또는 구분(區分)하는 일’을 말한다. 예컨대,

“사람은 할 역할이 있어 저마다 맡을 가름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아이들 수준으로 이번 성적을 가름했다고 했다고 봐도 된다.”

‘갈음’은 '갈다‘의 명사형으로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한다는 뜻이다. 즉 갈음은 서로 ’대체(代替)하는 일‘을 말한다. 아래의 말이 갈음에 적합하게 사용된다.

“내년에 발표 할 사업은 오늘의 말로 갈음한다!”

오래 전 상영된 영화<살인의 추억>은 사회적 반향을 많이 일으킨 영화. 경기도 화성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여성 성폭행 살인이란 아픈 추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그런데 우리말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이 영화제목 ‘살인의 추억’에 국어어법상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추억(追憶)’은 ‘지나간 일이나 가버린 사람을 돌이켜 생각’ 한다는 뜻이기 때문. 대부분 자신에 어린 날의 추억, 학창시절의 추억, 첫사랑의 추억 같은 특정한 그리움 같은 것. ‘살인의 추억’은 살인의 자리에 내가 있던지 나 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야 어법과 환경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살인’은 추억하는 일도,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추억할 만한 어떤 시기나 특정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살인에 연관된 당사자 가족의 가슴 아픈 기억을 되살릴 뿐 이었다.

‘추억’은 어느 시기와 장소에서 내가 누구의 추억을 회상(回想)하냐는 것. 결국 영화 ‘살인의 추억’은 여성을 성폭행하고 흔적없이 사라진 ‘살인행위에 대한 추억’이고 ‘살인자 자신의 음습한 추억’이 있을 뿐.

영화 ‘살인의 추억을 살펴보면 살인자나 살인한 용의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이와 관련된 몇몇 살인 용의자답지 않은 그들(?)과 이들을 수사에 초점을 맞춰가는 형사들의 고뇌가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이 영화의 제목을 ‘살인사건 형사의 추억’ 이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도둑놈의 추억’ 이라고 제목을 붙였다면 얼마나 어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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