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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공정한 사회로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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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0.06 13:3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여주 청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충청신문=정여주 청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이런저런 말이 많다. 시행 된지 며칠 지나지 않아 특권층을 겨냥한 법인데 왜 서민들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 경제를 마비시켜 이득 될 것이 무엇이냐는 등 부정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일부 기득권층이 법 시행과 내수 경제 침체를 연관 짓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뇌물이 아니면 안 돌아간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권한을 가진 기득권층의 잇단 부패 사건이 없었다면 애초에 김영란법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캄보디아에 다녀왔을 때였다. 앙코르와트 등 찬란했던 과거의 문화유산을 감상했지만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아주 불쾌했다. 캄보디아에 입국하려면 공항에서 단기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비자 카운터에서 신청서를 쓰고 여권과 함께 제출하려 했을 때 가이드가 담당공무원에게 우리의 여권과 신청서를 모두 넘겼고 우리는 여권을 넘긴 채 호텔로 빠져나왔다. 비자발급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담당자에게 뇌물을 주고 입국심사대를 빨리 나오게 된 것이니, 여권은 다음에 찾아서 주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출국 시에는 여권을 살펴본 담당공무원은 “원(one)달러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가족 모두의 여권을 저당 잡은 후 요구하는 뇌물에 너무나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출국 전 공항이용 만족도 설문지에 부족한 영작 실력으로 캄보디아에 다시 오고 싶지 않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 공무원들의 뇌물요구 관행을 지적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공무원들의 비리를 단속해야 한다고 적었다.

캄보디아에서의 경험은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캄보디아보다 깨끗한가?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온갖 학연, 지연, 혈연 등 거미줄 같은 복잡한 로비 네트워크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로비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이른바 인맥에 중독된 환자들은 자신들의 인맥을 강조하면서 항상 누구보다 빨리, 누구보다 쉽게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해 오고 있다.

이런 사례를 수십 년간 지켜보면서 한국 사회는 능력보다 연줄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그 이후 모든 사람, 모든 사물, 모든 현상을 화폐적 가치로 저마다 평가하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는 “어른들에게 친구를 새로 사귀었다고 이야기하면 정작 중요한 것은 결코 묻는 법이 없다”며 “몇 살이니? 형제는 몇 명이래? 몸무게는 얼마나 되니?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래?”라고 오직 숫자를 통해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우리 어른들은 어느새 사람을 그대로 존중하고 함께하는 인맥관리가 아니라 그들을 숫자로 파악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관리하는 것으로 인맥관리가 되고 있었다. 함께 하고 싶은 정이 아니라 필요한 대상으로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서 돈과 뇌물이 중요한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독 국내에서 금수저, 은수저 등 물질과 연관시켜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이 유행하는 건, 능력 이전에 자본의 막강한 파워 그리고 자본을 통해 이뤄지는 은밀한 거래가 너무나 쉽게 형성된다는 점을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새 우리는 지위가 높고 부가 많으면 죄가 안 되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 소위 상위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특권의식을 갖고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했다. 과중한 형량 때문에 탈주했다던 1988년의 지강헌은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라고 항변했고, 우리사회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낀다.

돈, 지위, 출신 등으로 다른 이를 깔보지 않는 대한민국,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평등하게 대접받고 사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과도기적 진통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는 우리가 가진 전통적인 정서나 인간관계를 합리적으로 바꾸어 가는 공정한 사회의 이행 과정일 것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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