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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유구무언 (有口無言)

민승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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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1.10 11:01
  • 기자명 By. 유영배 기자
일주일 후면 2017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이맘때면 주변에 수험생이 있는 사람들은 수능 선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게 된다.

요즘은 엿이나 찹쌀떡, 초코렛뿐 아니라, 비타민제나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아로마향, 기억력을 향상시켜준다는 홍삼제품등 매우 다양한 선물이 나와 있다.

한때는 잘 찍으라는 의미로 도끼나 포크를 사주기도 하고, 잘 풀라고 두루마리 휴지를 사주기도 했었다.

어떤 선물이건 좋은 점수를 얻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길 바라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선물로 무엇을 주었을까?

양반 관료 국가였던 조선시대에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시험을 치러야 했다.

당시 과거급제자의 평균나이가 36세나 되었다고 하니, 붓을 잡기 시작하는 여섯 살 무렵부터 시작하여 무려 30여년이나 시험공부를 하는 셈이다.

과거급제는 개인뿐 아니라 가문의 성쇠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일로, 한 가문에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과거를 통해 국가의 고위관료가 되었는가에 따라 행세하는 가문과 그렇지 못한 가문이 가려졌다.

그러니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엿은 수험생들의 필수 지참물이었다. 단 것이 귀했던 시대에 먼 길을 떠나는 선비들의 비상식량일 뿐 아니라, 엿처럼 철컥 붙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요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에게 합격을 기원 하는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는데,그림에는 합격이나 출세를 의미하는 한자와 소리가 같거나 상징이 유사한 식물이나 동물이 등장한다.

우리가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끈적끈적 잘 붙는 성질을 가진 엿이나 찹쌀떡을 선물하거나, 잘 찍고 잘 풀라는 의미로 포크와 두루마리 휴지를 선물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로 연과도’는 한 마리의 백로와 연꽃의 열매를 그린 그림이다.

여기서 한 마리의 백로란 의미의 일로(一鷺)는 ‘한걸음’이란 뜻의 일로(一路)와 같은 음을 가지며, 연꽃의 열매인 연과(蓮菓)는 ‘잇달아 과거에 합격 한다’는 뜻의 연과(蓮科)와 같은 음을 가진다.

따라서 ‘일로연과도’는 ‘한걸음에 잇달아 과거 시험에 합격하라’는 뜻을 나타내는
그림 인 것이다.

오리 그림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꼭 두 마리를 그린다. 한자로 오리 압(鴨)자를 파자(破字)하면 으뜸 갑(甲)인 새(鳥)가 된다. 과거시험의 1등, 2등, 3등은 갑, 을, 병으로, 갑(甲)이 바로 장원급제이다.

오리를 두 마리 그리는 것은 소과(小科)와 대과(大科)에 모두 합격하길 바란다는 의미이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10?)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도 과거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그려주었던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게 두 마리가 갈대 꽃송이를 꼭 붙들고 있는데,갈대 로蘆의 옛 중국 발음은 나귀 려驢와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나귀 려는 원래, 임금이 과거급제자에게 나누어주는 고기와 음식을 뜻하며, 그 뜻이 발전되어 전려傳驢 또는 여전驢傳이라고 하면 궁중에서 과거급제자를 호명하여 들어오게 하는 일을 가리킨다.

결국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물고 있는 것은 소과와 대과에 모두 합격하라는 의미이다.

더구나 게는 등에 딱딱한 껍질을 이고 사는 갑각류로 그 딱지는 한자로 갑甲이니
장원급제 하라는 뜻이 된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그림은 ‘감상한다’고 하고, 우리 그림은 ‘읽는다’라고 하는데, 우리의

옛 그림에는 이처럼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원의 그림이 뛰어난 점은 위쪽에 쓰인 화제(畵題)에 있다.

화제란 그림에 써넣는 글로, 작가가 자신의 그림의 의미를 보충하기 위해 직접 쓰거나,
친구나 감상자의 느낌을 적은 글이다.

그런 이유로 화제는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뿐 아니라, 작가의 주제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원이 그림의 위쪽에 활달한 필치로 써 넣은 글귀는“해룡왕 처 야 횡행 (海龍王 處 也 橫行)” 으로
이는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 옆으로 걷는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게가 용왕님 앞에서도 타고난 본성대로 옆으로 걷는 것처럼, 관리가 되더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자신의 본분을 지키라는 의미이다.

단원은 이 그림을 통해 과거에 붙는 것이 끝이 아니라, 붙은 다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도 권력에 붙어 아부하는 관리가 넘쳐났던 모양이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관직에 오를 때의 마음은 어디가고, 자신의 목소리도 없고, 대의도 명분도 없이,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벌이는 비굴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온 나라를 무기력하게 만든 사건으로, 올해 수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유구무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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