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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태안가는 길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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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9.12.22 14:18
  • 기자명 By. 충청신문
며칠 전 ‘태안군 도시전략계획 및 활성화계획’ 평가위원으로 위촉되어 태안을 가게 되었다. 400여리가 넘는 장거리였지만 ‘만리포라 내 사랑’의 노래가사처럼 태안은 생태의 보고이며 태안바다 해안탐방로 등 낭만이 서려있는 곳이다. 마침 테니스를 함께 치며 아끼는 후배를 만나볼 수 있어 기뻤다. 모처럼 집에도 가본다는 생각을 하며 2시간을 달려 미끄러지듯 당도한 곳은 아늑한 시골마을의 전형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집 주위에는 문전옥답이 그림처럼 드리워 있고, 시골집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3칸 집은 정겹기 그지없다. 부엌은 옛 그대로이며 장작을 지펴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옛 추억을 자아내게 한다. 작은 아래 윗방은 구들장을 놓은 온돌방이다. 농기구창고에는 집안에서 쓰는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리저리 방안과 밖을 살펴보며 유달리 절약정신이 남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눈시울을 적셨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겨울이면 장작을 패고,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이며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널어 말리느라 무 향내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우리도 따끈한 부위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선반에는 주렁주렁 걸린 메주 뜨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에는 감칠맛 나는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고구마,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쌩쌩 부는 바람에 문풍지는 울고 문고리는 얼어 손에 쩍쩍 붙는다. 아궁이에서는 활활 타는 장작불에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 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生)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했다. 추억어린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그립다. 온돌방은 세파에 밀려드는 바람을 속울음 삼키며 보내야 하는 고난의 순간마다 어머니 앞가슴처럼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재래식 부엌 식탁에는 정성스런 오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후배 내외의 살뜰한 모습에 은은한 행복감이 묻어난다.

밀려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태안군청으로 향했다.

장구한 역사의 숨결을 지닌 태안은 풍요로운 터전에 우뚝 솟아있는 백화산이 있어 한결 아름답다. 백화산 정기가 어려 일찍이 이곳 사람들은 남다른 기상으로 정의를 펼쳤으며 베푸는 인정과 여유는 바다와 같다고 전한다.

천년고도답게 문화의 깊이와 애국충절의 기운을 바탕으로 참된 사회 공동선이 꽃 피어나는 고장을 만들고자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마애삼존불 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장답게 ‘이종일’선생과 많은 애국선열을 낳은 고장으로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해안국립공원의 고장답게 자연을 사랑하며 친절과 정직으로 아름답고 정겨운 태안을 만들고자 함께하는 모습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본다.

선진국에선 물리적 개발 중심의 도시개발 방식으로부터 경제, 사회, 문화 등을 포괄하는 도시재생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도시쇠퇴 문제의 극복은 물론 사회, 경제적 활성화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는 새로운 대안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커뮤니티 보전, 이해관계자간의 합의 형성, 원주민 생활의 지속성 확보 등을 중시하면서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부문까지 포함하여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 정책이 도입되어 추진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시가지의 미활용‧저이용 토지의 적극적 활용, 녹색교통 정비, 커뮤니티를 강조하는 Creative City, New Urbanism, Smart Growth, Compact City 등이 다양하게 제안되어 현실에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정부에서는 2006년에 우리나라 건설교통 기술을 세계 7위권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첨단 도시개발, 플랜트기술 고도화, 교통체계 효율화 등 7대 전략사업을 선정하였다. 또한 도시재생사업은 첨단도시개발 사업군의 하나로, 쇠퇴도시 유형별 재생기법 및 지원체제 개발, 사회통합적 주거공동체 재생기술 개발, 입체복합 공간 개발, 저탄소 그린도시 인프라 재생기술 개발의 총 4개 핵심과제로 구성 추진하고 있다.

2010년 하반기 ‘도시재생지원법’ 제정에 따른 도시재생사업 본격화로 정부는 도시재생사업을 기반으로 도시재생기법개발, 재원확보, ‘도시재생지원법’ 제정, 도시재생을 위한 연계사업제도 도입 등 도시재생 정책형성을 위한 준비를 본격화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태안군에서도 도시재생 추진을 통한 지역현안해소로 자생적 재생을 통한 지역발전기틀을 마련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시재생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맞춤형 지역재생 추진으로 지역의 강점과 기회요인을 부각하고 약점과 위험요소를 보완하여 태안군 맞춤형 도시재생 사업을 실현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태안읍 중심지를 우선으로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추진사업 연계를 통해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지역 현안일 것이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과 상승효과를 위한 지역 자생산업 기반구축 마련은 물론 풍부한 지역자원 활용, 외부인 관광객 유입에 따른 경제 활성화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주민, 전문가, 관계자 등 다각적 의견수렴을 통해 지역민과 상생 발전하는 주민중심의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추진과 복지실현을 꾀할 일이다.

이에 필자는 역사‧교육‧생태가 공존하는 태안을 발전시키기 위해 생활환경 개선, 주민편의 증진으로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태안의 모습을 강조하였다. 그 외에도 커뮤니티 활성화, 도시재생기반조성을 통해 함께 아우르고, 지역정체성구축 및 상권 활성화 방안도 개진하였다.

경제개발 차원에서 너무 빠르게 조성되어 험난한 형태를 지닌 기존 도시들은 이제 새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었다.

청주시에서도 다각도에서 도시 재생과 문화 키움 정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가지 도로를 걷다보면 변화의 모습을 감지하게 된다. 청주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연초제조창을 비엔날레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국내 첫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라는 호평을 받은 것이다. 광복 직후 국내 최대 담배공장으로 출발한 옛 청주연초제조창이 청주시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문화 중심 시설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문화재생은 공간의 가치를 살리면서 문화의 혼을 담는 것이 아닌가. 불 꺼진 옛 청주연초제조창은 ‘문화제조창C’로 거듭나 청주의 문화 랜드마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에 필수적으로 각 도시는 지역역량강화와 세대교류를 통해 함께 어울리는 도시재생문화의 옷을 입혀보면 어떨까.

12월 한해를 마감하며 ‘태안군 도시전략계획 및 활성화계획’ 심사를 통해 옛 것의 향수를 음미하고 새로 태어나야 하는 도시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도시는 곧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얼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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