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쉽게 말하자면 대화 중에 “여자가 건방지게~” “남자가 쩨쩨하게~” “여자가 겁도 없이~” “남자가 창피하게~” 등의 언어를 구사한다면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녀에게 특정 성격을 부여하고 이를 근거로 획일화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자도 슬프면 울 수 있고, 여자도 거침없고 박력이 넘칠 수 있다. 남성도 요리나 미용을 직업으로 할 수 있고, 여성도 중장비 운전이나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할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격이나 직업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대의 성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이 된다. 상대의 성을 이해하기는커녕 비하하고, 상하 또는 우열의 의식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빈약한 탓이다. 최근 유튜브를 중심으로 급속 퍼지고 있는 격렬한 페미니즘이나 안티페미니즘 역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할 줄 모르는 빈약한 성인지 감수성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서슴없는 혐오 발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이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뒤처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것은 사회구성원 서로 간에 이해의 폭을 넓히고 배려하는 사회로 이끌어가는 초석이라 할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비단 남성에게만 요구되는 의식이 아니다. 여성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감수성이다. 여성 중 일부는 남성을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인식하거나, 남성이 중심이 돼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 이들을 발견한다.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통해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보면 여전히 성인지 감수성이 대단히 떨어져 왕조시대에서나 통할듯한 의식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가부장적 의식이나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 경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참으로 애석함을 느낀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가 다른 모든 면에서 젠틀맨으로의 구색을 갖췄다 해도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면, 지성인이란 이미지가 한순간에 날아가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중심이 돼 수시로 기관이나 단체 등을 중심으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활동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성인지 의식은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변해야 할 조직의 상류층이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기관의 장이나 간부, 기업의 대표나 임원 등 상부층은 교육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아 좀처럼 바뀌지 않고 오래전의 의식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자기 생각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를 답답하게 한다.
성인지 감수성이 뒤지는 이들은 상대의 기분이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한 채 성을 소재로 한 농담을 하거나, 상대의 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건넨다. 상대의 불편에 대해서는 좀처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에 대해서도 자신의 성이 중심이 된 입장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맞을 때마다 성인지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아야 할 대상이 이를 외면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기관장이나 기업의 대표 등의 의식전환은 대단히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지만 실상 잘 안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제안하고자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 장애 감수성 교육, 인권 감수성 교육 등은 반드시 기관장, 단체장, 기업대표 등이 참여해야 한다. 하부 조직원들에게만 교육에 참여하게 하고 정작 자신은 참여하지 않는 기관장, 단체장, 기업대표가 너무 많다. 진정 교육이 필요한 대상은 그들이다. 조직의 장이 의식을 바꿔야 조직 전체의 의식이 변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기관장, 단체장, 기업대표가 솔선해서 감수성 향상 교육에 참여하길 바란다. 수뇌부의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