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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양생(養生)과 안전(安全)문화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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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1.16 16:44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우리 선조들은 일상생활에서 재난에 대비했다. 조선 시대에 향관이 새로 부임하면 먼저 참나무를 심고 도토리를 비축하여 재난을 당한 백성들의 구휼(救恤)에 사용했다. 그러기에 참나무는 오늘날 전국 산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이 되었다. 또한, 주요 건축자재인 초목은 화재에 취약했기 때문에 기와로 지붕을 개량하고, 주요 건물에 ‘드므’라는 방화수 저장 용기를 설치하여 이 물을 초기 진화에 사용했다.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로 평안할 때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미리 대비한 것이다.

한옥을 지을 때 주춧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세운 나무 기둥이 비나 습함으로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주춧돌은 바닥이 평평해야 사용하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생긴 그대로 울퉁불퉁한 상태로 기둥을 세웠다. 주춧돌의 생긴 대로 나무 밑부분을 주춧돌에 맞게 깎아내는 것이다. 그랭이 질의 공법이 바로 이것이다. 주춧돌과 기둥에 못을 사용하지 않고 시멘트나 강력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게 하였으니 선조들의 지혜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학교의 교육시설안전인증 심사위원 위촉을 받고 종종 전국의 학교를 방문하며 꿈나무들을 생각해 본다. 교육부는 학교 건물 건축·인근 공사도 안전성 평가 필수라는 관점에서 모든 교육시설은 연 2회 이상 교육시설 안전인증제, 학교 내외 건설 공사 안전성 평가 의무화 등이 새롭게 도입되어 시행하고 있다.

이번 법령 제정으로 교육시설 특성에 맞는 안전관리 기준·체계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에 따라 교육시설의 안전 사각지대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 촘촘한 교육시설 안전망을 구축하여 우리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교가 더욱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그동안 교육시설에 관한 고유 법령이 없어 교육시설이 다른 법률에 따라 관리됨에 시설의 노후화와 재난·재해 등에 대비한 체계적인 관리·점검이 어려웠다. 또한 경주·포항 지진, 상도유치원 건물 붕괴 등 각종 재난·재해 및 안전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하였다. 또한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교육시설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교육시설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추진하였으며 법률이 제정되어 모든 교육시설을 종합적·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교육시설법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모든 교육시설에 대한 안전 점검·관리가 강화되었다. 그간 교육시설은 ‘시설물 안전법’ 등 다른 법령에 따라 관리됨에 약 75.4%가 법적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모든 교육시설에 대해 연 2회 이상 안전 점검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결함 발견 시 보수·보강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학교 건물을 건축하거나 학교 밖 인접 대지에서 건설 공사를 할 경우, 학생들의 안전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착공 전까지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아울러 환기·조명 등의 설비 설치, 냉난방기 운영 및 적정 면적 확보 등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 기준에 관한 세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시설의 종합적인 관리·지원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교육시설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행계획 및 실행계획을 매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또한 법령 시행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을 지원·관리하기 위해 ‘한국교육시설안전원’을 설립하고 시도교육청 단위로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을 설치·운영한다. 아울러 모든 교육시설에 대한 현황 및 관리 정보가 포함된 ‘교육시설통합정보망’을 구축, 국민 누구나 학교의 안전관리 실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교육시설 정보를 공개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등을 활용, 안전 점검·관리 주기 및 시설 개보수 시점을 적기에 예측할 수 있도록 교육시설 관리 지능 정보화 기반도 마련한다는 계획에 큰 의미가 있다.

건설 현장에서는 수시로 안전사고가 발생한다. 평소에 지속적인 점검을 한다고 해도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사고는 생긴다. 지난 1월 11일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는 처참하고, 온 국민을 경악하게 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떠올리게 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아파트 건축물이 무너지기 직전 최상층인 39층에서 콘크리트 타설 공정이었다.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나면 평평해야 할 콘크리트면 중간 부분이 약 10cm 이상 내려앉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콘크리트 파괴는 일반적으로 철근을 포함한 양생 정도에 따라 달라지며 ‘연성파괴(Ductile Fracture)’와 ‘취성파괴(Brittle Fracture)’로 구분된다. 연성파괴는 엿처럼 점점 늘어나면서 마지막에 파괴되는 현상이고, 취성파괴는 굳은 엿가락이 깨지듯 순간적으로 파괴되는 것이다. 같은 엿이라도 성분에 따라 파괴가 달라지듯 콘크리트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고는 연성파괴로 시작된 듯 보인다.

건축물 안전에서 콘크리트 내부에 들어가는 철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생(養生)'이다. 콘크리트 타설 후 굳는 과정에서 강도가 결정된다. 철근을 많이 넣었다고 해도 철근과 시멘트가 제대로 결합하지 않으면 큰 힘을 낼 수 없다. 콘크리트는 영하의 날씨에는 양생이 되지 않는다. 양생은 콘크리트 타설이 끝난 후 온도나 충격 등 다른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굳게 하는 작업이다. 거푸집에 콘크리트는 물과 자갈, 모래, 시멘트 등을 배합하여 철근과 함께 원하는 형상으로 만드는 재료다. 겨울철 영하의 날씨에는 콘크리트 내부의 수분이 얼어서 양생이 되지 않는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사고 발생 당시 광주의 최저 기온은 11일 영하 3.5℃ 10일 영하 2.2℃로 양생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가피하게 공사를 하려면 양생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 보온 등을 통해 온도를 높이는 조치가 필수다. 이번 공사에서 관리자들이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서두르더라도 위험 상황 시 기능공들은 단호히 공사를 진척시키지 말아야 했었다.

안전불감증을 탓하지만, 그보다 안전 지식 부족이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콘크리트 양생을 들 수 있지만, 시공 절차 문제 등 다른 요인이 중첩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기능공들에게 정확한 안전 인식을 고취 시켜야 한다. 단순히 안전을 강조하는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위험한 상황에서 사고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안전교육과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안전교육은 학교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안전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치료가 가능하지만, 안전을 잃으면 목숨을 앗아간다. 한 사람의 행동이 다수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고, 모두를 지켜낼 수도 있다. 지금도 어디에서 사고 직전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보는 안목이 절실하다.

안전불감증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성과제일주의’ 문화가 합쳐진 한국 사회만의 특징이라는 뼈저린 성찰의 시간이 요구된다. 안전불감증을 어떤 ‘고질병’이나 심지어는 ‘불치병’으로 여기려는 태도들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는 한편 우리 사회의 안전사고에 대한 안전 민감 의식을 널리 공유해 안전의 중요성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보기에 좋은 학교, 빌딩, 마을, 사회, 모든 환경이 완벽하다 해도 우리의 삶터에서 안전(安全)하지 않은 모든 것은 존재 이유가 없다. 안전은 삶에서 가치이고, 최소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기다려주어야 제대로 자라고, 온갖 열매도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익어가는 것이다. 이제 양생(養生)의 안전 문화가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에는 정부로서도 시급한 과제이며, 온 국민의 숙제로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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