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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부산의 교훈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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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4.17 17: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봄 햇살을 받으며 연이틀 부산광역시청을 방문했다. ‘시지정문화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허용기준 조정용역’ 평가와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외국인 대상 홍보용역’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것이다.

부산은 좁고 복잡한 도로 사이에도 눈여겨 볼만한 소규모 건축들이 산재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산의 매력적인 공간 건축을 통해 조망으로써 도시, 건축,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높여 주고 지역 건축의 가능성을 그려보게 한다. 넓게 면해 있는 바다, 도시에 젖줄을 대는 강과 천, 병풍처럼 둘러친 산을 끼고 있는 지역적 특성 위에 오래된 역사적 건물과 최첨단 빌딩들이 한데 뒤섞인 풍경을 가진 매우 다이내믹한 도시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산복도로의 빼곡한 집, 군집해 멋을 뽐내는 고층 빌딩은 다양한 건축 풍경의 산물이다. 최근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 태종대 등 기존 관광지와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개발되면서 국내외 관광객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부산의 새로운 얼굴로 부상한 곳이 감천문화마을, 국제시장, 센텀시티, 마린시티, 산복도로 등이다.

흔히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로 불린다. 작은 포구 도시가 일제강점기의 식민 도시와 한국전쟁의 피란 수도를 거쳐 산업화와 탈산업화의 번영과 쇠락을 겪었지만, 지금은 한국 최대 무역항을 보유한 무역 도시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서사와 정서가 켜켜이 쌓여 다양한 결을 지닌 부산은 영화와 드라마, 문학 등 여러 작품의 배경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이름 자체만으로도 모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곳이다. 이 같은 매력은 ‘정란각’ ‘옛 한성은행’ ‘비욘드 가라지’ 등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근대 건축물뿐 아니라 도시화 과정에서 산허리까지 촘촘히 들어선 집들과 바다를 메워 지은 건축물, 그 밑그림 위에 주변 맥락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한 켜 한 켜 새로이 쌓아 올린 건축물이 도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 영화의전당은 국제 건축 현상공모에 당선된 오스트리아 건축 회사 쿱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의 울프 D. 프릭스(Wolf D. Prix) 설계에 따라 지난 2008년에 완공되었다. 규모나 건물의 형태미가 세계에 내놓을 만한 부산의 상징건물이라 할 수 있다. 옛 수영 비행장의 차가운 시멘트 땅 위에 문화의 첨병인 영화의전당이 건립된다는 것 자체로 건립 당시에는 천지개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건축가는 땅의 표피를 뚫고 솟구쳐 오르는 융기와 침강의 지각 변동을 건물의 형상에 대입해 창의적 디자인을 제시했다. 짙은 회색의 외벽에 비뚤비뚤 경사진 덩어리가 결합하고, 어긋나게 얹혀 있는 대형 지붕이 공중에 솟구쳐 오른 모습이다. 그래서 이름도 ‘시네마운틴’ ‘비프힐’ ‘빅루프’ ‘스몰루프’ 등으로 지었다. 특히 기둥이 없는 거대한 지붕을 표현하기 위해 매우 실험적인 구조 기법을 채택했다. 영화의전당은 거대 지붕을 두 개씩이나 가지고 있다. ‘빅 루프’와 ‘스몰 루프’라 하여 길이가 무려 162.5m와 120m이다. 지붕의 아랫면은 굴곡지게 휘어져 있고, 4만여 개의 LED 조명이 만드는 다양한 패턴 이미지들이 춤춘다. 그 아래에 있다 보면, 이것은 운동회날 하늘에 나부끼는 만국기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조명 연출은 축제의 장을 더욱 들뜨게 한다.

멸치로 유명한 대변항을 스쳐 좁다란 지방도를 따라가면 세련된 외관의 건물을 만나게 된다. 작은 집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코티지다. 뒤로는 낮은 산자락이 막아섰고, 앞으로는 작은 만(灣)이 양팔을 벌린 천혜의 땅 위에 건물이 있다. 산과 바다, 뭍과 하늘이 만나는 경계의 땅에 인공물을 세운다는 것은 자못 쉽지 않은 일이다. 가능한 원지형의 특징을 해치지 않고 인공을 가미해 경관의 멋을 배가하는 디자인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진입하는 도로에서 보면 건물은 지형에 파묻힌 듯 낮게 깔려 있다. 축을 조금씩 달리하며 한 줄로 잇댄 세 동의 건물은 각기 다른 각도로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거기에서 진행 방향을 바꿔 양쪽의 홀로 갈라져 들어가는 공간 중첩이 방문객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부산시민 공원의 땅은 지난 100년 동안 정체성을 잃은 채 역사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마장과 병참기지, 군사훈련소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과 함께 미군정이 시작되자 미군의 주둔기지로 활용되었다. 해방 이후 전쟁이 끝났음에도 이곳은 여전히 ‘하야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2014년 5월 1일, 드디어 100년 만에 시민에게 되돌아온 이 땅을 공원화하면서 세계적인 조경 디자이너 제임스 코너(James Corner)가 전체적인 기획을 맡았다. 부산 최대 규모의 공원에는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라는 다섯 가지 주제의 숲길을 근간으로 각종 시설물이 배치되었다. 공원 곳곳에 옛 미군 부대였던 시절의 담벼락과 막사, 망루, 부사관 숙소 등 과거의 두께를 남겨두었다. 특히 낡은 목재 전신주를 재활용해 꾸민 ‘기억의 기둥’과 플라타너스 90여 그루를 모아놓은 ‘기억의 숲’이 인상적이다.

이렇듯 축적된 항구도시 부산에서 2030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류를 위한 세계박람회는 인종과 지역,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쳐왔다. 부산에서는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통해 세계의 국가 및 시민들과 함께 과학, 기술 및 문화 분야에서 인류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기후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고민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내일을 열어 가야 한다.

작금 세계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중 양강구도의 격화 속에 세계 질서는 급격히 재편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힘겨루기가 고조되고 있다. 더구나 지구 전체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에게 탄소 중립과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문명으로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제 선진국 대열에 선 대한민국이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100년 전의 격랑 속으로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 모든 세대가 피와 땀으로 축적해온 기적의 역사를 바탕으로 다음 세대들이 더 큰 꿈을 키우며 성취할 수 있도록 흔들림 없는 기반을 구축해야 할 때다.

부산은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은 도시이다. 한국전쟁 당시 전국의 피란민을 수용한 역사적인 도시이며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을 통해 발전한 원동력이 되었던 도시이다. 현재는 교통‧물류 허브로 전 세계 2위의 환적 중심 항만이면서 k-pop과 영화, 게임 등 문화 콘텐츠를 비롯해 다양한 국제행사 및 전시를 개최하는 개방성과 포용성, 다양성을 지닌 글로벌 도시로 성장 변화하고 있다.

하계 올림픽, 월드컵에 이어 세계박람회를 개최한다면 세계적인 행사 3관왕을 이룬 7번째 국가가 되는 것이다. 폐허의 최빈국에서 개도국과 선진국을 경험한 대한민국이기에 국가 간 가교역할을 세계가 기대하고 있다.

세계박람회 참가국은 과학‧기술‧문화의 성과를 선보이며 새로운 미래상을 전시하고 연출하여 자국의 역량을 선보이는 장이다. 독특한 전시관은 분명 부산의 큰 인프라가 될 것이다. 명실상부한 세계박람회는 도시창조의 시발점으로 세계인의 방문을 통해 도시의 역량이 커진다. 사회간접자본,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브랜드 가치상승으로 세계 속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2030 그 해도 빨리 다가올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부산 세계박람회의 성공을 기원하며 새삼 부산의 교훈을 소중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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