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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아 템포 (A Tempo)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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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4.19 15:2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4월 18일 자로 인원 제한과 시간제한이 없어졌다. 2년을 옭아매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이 나면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실험 중이다. 과연 코로나 19와 앞으로의 나날을 공존할 수 있을까.

음악 악상기호 중에 늘임표 기호는, 이 기호가 쓰인 부분에서 ‘잠시 멈춤’을 뜻한다. 원어인 이탈리아어로는 ‘정지’라는 뜻인 페르마타(Fermata)가 원래 표기지만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놓은 모습이라 하여 코로나(Corona)라고 불렀다. 그리고 말 그대로 코로나 시국에 모든 것이 정지하고 말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한 밈(meme)으로 유명한 ‘코로나 교향곡’은 텅 빈 오선지에 단지 저 코로나(늘임표) 하나만 달랑 찍혀있다. 모든 것이 멈춰 서버렸다는 자조적인 음악인들의 표현이었으리라.

공연계는 2년 동안 말 그대로 멈춰섰다. 2020년 봄부터 모든 연주회와 음악 행사들이 취소되었다. 천재지변과 화재. 연주자 개인의 유고가 아닌 이상 일어나지 않던 당일 연주취소가 재난문자 알림만큼이나 빈번했다. 전대미문의 전 세계적 현상이 2년씩이나 가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기에 공연은 늘 살얼음판 걷듯 아슬아슬하게 열렸다. 독주회가 아닌 담에야 음악회라는 게 여러 명의 연주자와 스태프가 함께 하기 마련이어서, 어디선가 들려온 한 명의 확진은 다른 연주단체나 연주회의 운명을 좌우했다. 아니 그보단 매일 들리는 확진 소식에 각개의 연주자들은 너도나도 가슴이 철렁했던 경험을 모두 가졌었다. ‘나는 오늘 어떤 연주회나 리허설, 혹은 연습을 갔었지?’ ‘이거 내가 확진되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포함 출연 인원 200명짜리 오페라가 나 하나 때문에 날아갈 수 있겠는걸’. 생각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솟는 그 느낌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 여러 참여 인원에게 한꺼번에 본의 아닌 민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에 연주자 그 누구도 맘이 편치 않은 2년이었다. 차라리 확진 이력이 있던 사람이 멤버로 합류하면 이번 연주에선 안 걸리겠지 여기며 안도할 정도로 그 압박감이 컸다. 여기엔 각종 후유증으로 고생하지나 않을까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로 느끼던 시절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전설 같은 에피소드도 여럿 생겼는데 실내 연습 인원 제한이 막 적용되었을 때다. 오페라 연습 중 출연진이 50명이 넘어가는 장면으로 넘어가자 행정 스태프나 기술 스태프가 인원 제한에 맞춰 연습실 밖으로 나가는 촌극도 벌어졌다. 그러다가 공연 당일에 연주할 오케스트라 인원 포함 무대 공연자가 50명이 넘어가는 상황도 공연장 내 실내인원초과라는 유권해석이 나오자 오케스트라를 전자 악기로 대체하고 합창단 인원을 반 토막 내가며 올린 초연 오페라도 있었다. 50명은 관객까지 포함한 규정이었다.

연습 기간 내내 마스크를 쓰고 같이 식사는 꿈도 못 꾸던 기간에는 두 달간 같이 연습하던 상대 배역의 얼굴을 공연 전날 분장리허설 때 처음 보는 경우도 있었다. 피차간에 마스크를 벗은 맨 얼굴을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분장을 마치고 대기실 통로에서 인사를 하면서도 못 알아봤으니 민망함과 어색함만 밀려온다.

신입생의 얼굴을 한 학기가 다 지난 기말 실기시험에 최초로 보는 일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나마 관악기나 성악의 경우는 실기시험 볼 때 투명 스크린 실드를 친 상태에서 마스크를 벗고 입으로 연주를 하다 보니 얼굴을 확인할 수 있지만, 피아노나 현악기, 타악기는 마스크 벗은 모습을 시험 때도 볼일이 없다 보니 지도 학생을 못 알아보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었다. 궁여지책 끝에 신입생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 상담할 때 차를 대접하며 잠깐씩 마스크 벗은 얼굴을 틈틈이 보며 모든 지도 학생 얼굴을 익혔다는 상담지도 교수님의 한탄도 떠오른다.

악곡에서 코로나(잠시 멈춤) 기호는 그 마디 안에서는 유효하다. 그렇게 그 마디 안에서 음악이 정지하다가 그다음 마디를 다시 시작할 때 어김없이 따라붙는 악상기호도 있다. 아 템포(A Tempo)다. 이탈리아어 전치사 A와 시간이라는 뜻의 Tempo의 결합인 ‘아 템포’는 ‘원래 빠르기로 돌아간다’라는 뜻이다. 코로나(잠시 멈춤) 기호 다음엔 반드시 악곡의 속도를 원래 속도대로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붙이는 기호다.

2년간의 지긋지긋한 코로나를 겪었다. 이젠 원래 있던 자리로, 방향으로, 속도로 돌아가야 할듯하다. 일상의 아 템포(A Tempo)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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