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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LINC3.0사업단장과 보부상, 카니발리즘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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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5.01 14: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대학교수가 좋은 건 일정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자유를 스스로 ‘내팽기치는’ 사람, 보직 교수다. 보직에 대한 생각은 가치관, 권력욕구의 양에 따라 다르다. 죽어도 보직을 하기 싫다는 층도 있다. 시키면 하는 사람도 있다. 보직 전문 교수도 있다. 편한 사람을 보직에 앉히는 경우, 필요한 사람을 선택하는 대학, 이 또한 임용권자의 가치관과 성장 배경에 따라 제각각이다.

대학에는 여러 보직이 있다. 대학의 경쟁력과 가장 직결되는 보직 하나만 고르라면 LINC3.0사업단장이다. 올해 대학가를 크게 달군 게 산학연협력 생태계 조성을 위한 '3단계 산학연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이하 LINC 3.0사업) 선정 경쟁이다. 일반대는 가선정 결과가 이미 발표되었다. 이번 주 목요일 전문대 분야 가선정 결과를 끝으로 두 달간의 경쟁이 막을 내린다.

일반대 기준으로 대학당 기술혁신선도형은 6년간 330억원, 수요맞춤성장형은 240억원, 협력기반구축형은 120억원이 지원된다. 큰돈이다. 대전투에서의 승패가 조직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대학이 이기고 졌을까? 경쟁에서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빛이 바랜다. 당락은 사업단장에 따라 갈렸다고 본다. 대학 내 최고 에이스들로 보고서 작성팀이 구성되었다. 보고서 모든 내용을 외다시피 한 단장이 있는가 하면, 거창하게 팀을 구성한 채 정작 단장은 조정 역할만 한 단장도 있었다. 당연히 전자가 이긴다. 기술혁신형의 경우 한 페이지 당 1억 6500만원 짜리(보고서 200페이지, 6년간 330억원 지원) 경쟁이다. 편한 사람과 필요한 사람 중 어떤 교수를 단장으로 임명했느냐에 따라 수백억원의 결과가 달라졌다고 본다. 물론 운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겠지만. 아깝게 선정되지 못한 대학, 생사를 걸고 분투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은 단장과 집필진은 지금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애교심과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친 당신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당신네 대학의 희망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부상이라는 게 있다.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봇짐장수는 값이 비싸고 들고 다니기 쉬운 방물과 같은 물건을 팔았다. 등짐장수는 소금, 생선 등 무게가 나가는 물품을 다루었다. 이러한 보부상을 장터와 장터를 오가며 산다고 하여 ‘장돌뱅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LINC3.0사업에 참여하는 교직원은 ‘장돌뱅이’ 기질이 있어야 한다. 산학연(産學硏)을 유기적으로, 역동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보상은 전국적인 조직을 갖기도 하였다. 산재한 조직을 전국적인 상단(商團)으로 묶어 소규모 자본의 행상을 규합하기도 했다. 보상단은 결속을 다지고 상권의 확립을 기하였다. 권역별 LINC3.0사업단장협의회와 전국사업단장협의회가 일종의 보상단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 간 성과를 공유하고, 미참여 대학에 그 성과를 전수해야 한다. 닷새마다 서는 시장을 오일장(五日場)이라고 한다. 대학단위 별로, 학문단위 별로 다양한 오일장이 열려 공유와 협력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닭이나 오리를 보면 같은 종끼리 서로 공격하기도 한다. 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닭 하나가 다른 닭의 깃털, 벼슬, 항문을 쪼아대기 시작한다. 상처가 생기거나 피를 흘리게 되면 옆에 있는 무리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조류는 빨간색을 보면 흥분하고 공격하는 성향이 있다. 카니발리즘(cannibalism, 同種捕食)이다. 카니발리즘 습성이 초기에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면 습성을 없애기 힘들어진다. 카니발리즘의 악순환이 전체 닭 무리로 급속도로 확산되면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다. LINC+사업에서도 몇몇 대학에서 이와 같은 카니발리즘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업단장의 역량이 선정단계뿐만 아니라 사업 추진과 그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망, 이적(移籍), 생명에 영향을 줄 정도의 중병이 아닌 한 단장 교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선거를 통해 총장을 선출하는 대학의 경우 선거과정에서의 논공행상으로 사업단장을 교체하려는 시도는 단연코 막아야 한다. 아예 원천적으로 단장은 총장선거 캠프에 가담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선정평가와 단계평가를 무사히 넘기자마자 단장을 측근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도 엄단해야 한다. 대학 내 실세들의 정교한 괴롭힘에 지쳐 외형상으로 단장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굳이 교체를 원한다면 사업비의 20%를 반납하도록 해야 한다. 단계평가에서 단장 교체를 원할 경우 총점의 8%를 감점(재진입평가는 예외)하고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단장이 대학 내 조직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사업 계약서에 명기하고, 지도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산학연협력에서 LINC3.0사업단장의 보부상적 역할을 기대한다. 카니발리즘에 시달리지도 말고…
‘사서 고생하는’ 보직자, 당신들의 무운(武運)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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