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작고하신 세종시 출신 극작가 윤조병 선생님은 취기가 돌면 늘 버릇처럼 해 주시던 말씀이 있다. “김회장, 우리 사람하자.”는 말씀이셨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가 부족해 무슨 뜻인지 의아했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곧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자는 의미였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앞서 먼 길 떠나셨지만 요즘에 그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고 싶지 않아도 후보자들의 속속들이 면면을 보게 된다. 또한 새 정부 들어와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볼 수 있었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국민의 공복으로서 일꾼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기도 하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그에 합당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선량한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면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 많다. 도덕을 말하려면 말하려는 사람의 도덕적 기준이 높아야 하듯 국민이 위임한 공복의 자리를 수행하려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지탄의 대상이 된다면 어떤 국민이 눈을 떠 바라보고 귀를 열어 말을 듣겠는가 말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런 말이 통용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중환의 초기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과상회나 채소가게에서 작은 물건 하나 고르는데도 같은 값에 싱싱한 것을 찾게 된다. 하물며 권력을 위임해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게 할 일꾼을 뽑는데 있어 흠결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면 선택의 기로에 선 국민들은 피로에 젖고 말 것이다. 그 중에 덜 나쁜 사람이나 덜 더러운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래저래 힘든 국민에게 삶의 무게만 더 얹어주는 비정상적인 시대의 흐름이 씁쓸하다.
세상에는 꼭 있어야 할 사람과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리고 없어도 될 사람이 섞여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지방선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자리를 자청하고 나선 사람들의 겉 모습 뿐만 아니라 학벌이나 재산 보다 그 사람이 내면에 지니고 있는 인격이나 성품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맡긴 일의에 대한 수행능력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해야 해야 하는 것도 같은 사람의 몫이다. 믿고 선택해 주었던 만큼 맡은 바 역할을 다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면에 믿음을 실망으로 깨는 사람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인정이나 학연 또는 지연의 연결고리가 무관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가능한 한 사람 됨됨이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후일 만족할 수는 없어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과 함께 선량한 국민들의 미래와 꿈을 결정하는 선택의 날이 다가 오고 있다. 때만 되면 무기로 등장하는 정당이나 이념, 그리고 지역의 차이를 초월해 정말 사람다운 사람을 선택해 앞세워야 할 때이다. 고 윤조병 선생님의 “우리, 사람하자.”라는 말씀이 새삼 떠오르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