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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나이들면 보이는 것들

도순구 전 충남개발공사 관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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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5.29 16:0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도순구 전 충남개발공사 관리이사

지금으로부터 56년전 필자의 초등학교 6학년 수업시간, 담임선생님께서 어머니의 날(당시에는 ‘어버이 날’이 아닌 ‘어머니 날’ 이었다)을 맞아 시 한편을 읽어 주셨다. 시의 제목은 춘원 이광수 작 ‘서울로 간다는 소’,

깎아 세운듯 한 삼방 고개로/ 누런 소들이 몰리어 오른다./ 꾸부러진 두 뿔을 들먹이고/ 가는 꼬리를 두르면서 간다.~중략~ 갈모 쓰고 채쭉 든 소 장수야/ 산길이 험하여 운다고 마라./ 떼어 두고 온 젖메기 송아지/ 눈에 아른거려 우는 줄 알라.~

시 낭송을 마치신 선생님께서 반 친구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한 친구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근데 소가 왜 서울로 간데요? 서울엔 풀도 없을 텐데~”
당혹스러워 하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렇다. 13살 어린 친구의 눈에는 암소의 모성애와 도축장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어느 방송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할 때 창밖에 보이는 것이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청년기에는 산(山)만 보이더니, 중년이 되니까 나무들이 보이고 노년이 되니까 묘지만 보인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며 느끼는 것중 하나가 시간과 세월의 힘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별도의 공부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깨닫게 해준다. 어릴 적에는 봄이 되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필자의 나이가 어느 덧 고희의 문 앞에 다다르니 가로수 옆 돌 틈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만 보아도 감흥에 젖게 된다.

젊은 시절 생활속에서 수시로 듣는 아내의 충고는 그저 잔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잔소리 속에서도 사랑이 보인다. 그래서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다가 ‘옳소, 맞소, 그렇소’를 연발한다. 이른바 가정 평화를 위한 ‘3소 리액션’ 작전이다.

나이 들면 모두 공처가가 되는 이유가 이런 것인가?. 지난 2009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조금은 알듯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불편을 느끼는 것이 시력의 감퇴이다. 세월이 갈수록 안경의 두께가 두꺼워 지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되면서 글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 자동차협회(AAA) 통계에 따르면 가장 안전하게 차를 모는 이들은 60대이지만 환갑을 넘기면 치명적인 사고건수가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노인이 되면 ‘주변시(視) 상실’현상이 와서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큰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 현상이 왜 오는지를 필자가 알 수는 없지만, 앞 만보고 옆은 잘 보지 못하는 사각공간이 넓어진다는 뜻이 분명하다. 그래서 일까? 예전엔 단번에 진입시켰던 주차장에 지금은 서너 번의 전진 후진을 한 후에야 비로소 시동을 끄게 된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겉옷을 받아 걸어주는 아내의 얼굴 주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젊은 시절의 그녀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측은지심을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 “아내의 생일은 기억하되 나이는 기억하지 말라”는 명언의 의미를 기억해 낸다.

얼마 전 벗들과의 모임에서 누군가 이런 농담을 건 냈다. “나는 말이야! 결혼이후 3년까지는 이성애, 10년까지는 전우애, 지금은 인류애로 살고 있어” 모두가 한바탕 웃었지만 이 또한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마음의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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