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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참외와 단팥빵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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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6.21 13:4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

초여름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요즘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올 생각을 하니 벌써 필요없는 걱정의 그림자가 엄습한다. 개인적으로 여름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친정어머니의 생신이 한여름 이어서 어릴 때는 그 여름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너무나도 길고 먼 여행을 떠나신지 몇 년이 되었기에 여름은 나에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계절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름에 한창인 노란 참외를 보면 어머니가 그리워 울컥하는 마음이 밀려와 여름이라는 계절은 즐거움보다는 나에게 조금은 버겁고 힘든 시간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노란 참외의 단맛을 느끼며 여름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었지만 아울러 어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이 뿌연 슬픔으로 다가온다. 여러 가지 과일 중에서 유난히 참외를 좋아하셨던 어머니! 어머니께서 참외를 맛있게 드시면서 행복하신 듯 밝게 웃으셨던 모습이 지금 이 순간도 눈앞을 아른거린다. 참외라는 단순한 과일이 이제는 어머니의 작고로 생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점철된 의미 있는 추억의 상징이 되었다. 참외와 더불어 또 어머니를 생각나게 해주는 단어 단팥빵! 어머니가 항상 즐겨 드셨던 빵이다. 가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나도 제과점으로 달려가서 단팥빵을 몇 개 사가지고 와 입에 넣어본다. 그 맛의 그리움은 어머니에 대한 어린 막내딸의 그리움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싫어했어도 나이가 드니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음식들이 좋아지면서 먹고 싶어진다. 작고하신 어머니를 생전보다 더욱 이해하게 되고, 더 느끼고 싶어지는 자식의 애정 어린 마음의 발로인 거 같다. 어머니가 살아생전 우리 곁에 계실 때는 몰랐다. 참외가 그렇게 달고 맛있는 과일인지를, 단팥빵이 그렇게 입맛을 돋우는 빵인지를···. 어머니는 5남매를 키우다보니 자식의 식성이 모두 달라서 어쩌면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어머니 생신인 그날만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참외와 단팥빵을 우리는 반드시 준비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철하셨던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기만 하다.

어머니가 떠나시기 몇 달 전에 외할머니가 그립다고 하시면서 선산 묘소에 가서 뵙고 싶다고 우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막내인 내가 어머니 모시고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걸 못 지켜드려 너무나도 죄송한 마음 감출 수 없다. 어머니의 그 작은 소원을 이행하지 못한 자식으로서의 죄스러움이 크게 다가온다. 돌아가신지 몇 십 년 되는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슬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어머니의 감정이 지나치게 오버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작고하신 후 지금의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마음 속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딸 앞에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펼치면서 예전 생전에 어머니가 울면서 외할머니를 그리워 했 듯이 똑같은 모습으로 울먹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먼 훗날 예쁜 딸도 자식 앞에서 나와의 추억 보따리를 풀면서 울먹거리게 될까? 어머니가 좋아하셨고 또 내가 좋아하게 된 노란 참외를 보면서 딸도 내 기억을 잠시나마 하겠지 ! 그러면서 딸도 엄마인 나와의 추억을 빌미로 어쩌면 참외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음식은 단순히 먹는다는 의미 외에 추억을 적립하고, 추억의 누군가를 소환하고, 추억의 그 순간을 선명하게 재현시켜 준다. 이렇게 추억의 매개체인 음식은 고맙게도 추억의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곧 어머니의 생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정성스레 차릴 계획이다. 지금 이 순간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식사를 생전에 어머니와 자주 하지 못한 게으름과 죄송함이 밀물되어 내 시야를 가로막는다. 나이가 들면서 추억이 때로는 기쁨보다는 아픔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어느 여름 날 오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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