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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배신(背信)

허영희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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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7.10 15:0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허영희 대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서로를 섬기는 세상을 꿈꾸고 싶은데 이 또한 사치일까! 각자의 자리에서 좀 더 행복한 꿈을 가져보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일까?

춘추전국시대쯤에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치국(治國)의 도를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길 ‘음식이 풍족하고, 군비가 넉넉하며, 백성의 신임을 얻으면 된다(足食足兵, 民信之矣)’라고 답하였다. 자공이 다시 치국(治國)의 도에 관하여 물었다. ‘세 가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스승님, 어떤 것입니까?’ 제자의 물음에 공자는 ‘먼저 군비를 버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공자는 ‘음식을 버려서라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우리네 삶 안에서 무엇을 제일 먼저 포기하고 버려야 할까!

이스라엘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배신은 두터운 인간관계를 붙인 접착제를 떼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고, 그는 저서 ‘배신’에서 ‘배신이 성립하려면 그 관계에 상처가 생겨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을 9층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그중에서 배신자를 가장 지독한 지옥에 둔 것을 보아도 배신이 인간에게 의미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 간에 또는 개인과 조직 사이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 도덕적, 심리적 갈등을 생산하는 추정상의 계약, 신뢰, 또는 자신의 파괴나 위반을 흔히들 배신(背信), 영어표기로는 ‘betrayal’이라고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믿음과 의리를 저버리는 것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고 우리 역시 경험하면서 오늘을 버티고 살았었다. 상처 주고 상처받고, 분명히 삶의 불행한 굴레인데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한계이기에 배신이 나쁘다고 평가하기에는 변명이 궁색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네 삶이 축구로 치면 스트라이커만으로 농구로 치면 센터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키 큰 나무가 높은 곳에 키 작은 풀이 자라기 어렵듯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의 구도를 이렇게 불공평하게 세팅한다면 수풀 안, 작은 풀들이 싹을 틔울 수가 없는 것처럼 함께 할 수 없는 경쟁의 구도가 우리네 삶을 의미 없게 만들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라고 자신에게 질문했을 때 깔끔하고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으려면,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한 삶 여정의 목적 없는 열정을 내려놓고 인생을 재점검해봐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기교나 처세가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해 삶을 바꿔나갈 수 있는 쉽고 확실한 원칙들을 제시하면서 성실한 노력에 배신당하지 않는 성공적인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살다 보면 테크닉 위주의 처세술이 아닌 내면에서부터 변화는 우리네 삶의 근본적인 방법들로부터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언제든 편집 가능한 인생 스토리가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시작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분한 이유가 되고 내 인생을 이끄는 리더가 나로 인하여 비롯되었음을 보게 된다.

얼마 전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맨유 이적에 열받은 토트넘 팬들이 에릭센 유니폼을 불태우는 영상을 SNS을 통해 보게 되었다. 에릭센의 ‘리그 라이벌’ 맨유행에 일부 토트넘 팬들이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배신에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아마도 토트넘 팬들은 축구 경기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망각한 에릭센에게 화가 난 것이라고 여겨진다. 축구 경기와 승리의 목적, 본질은 관중이다. 모든 경기는 관중이 없으면 존재가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한두 번쯤 배신을 경험하게 되며 배신은 소속 이탈자에게 씌우는 일종의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의리와 배신에는 동전의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분법적 해석도 가능하다. 즉, 이쪽에서 보면 충성이지만 저쪽에서 보면 배신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에 배신당한 사람은 많은데 자기가 배신했다고 하는 사람은 많이 존재 하지 않는다. 배신은 개념이 명확한 것 같으면서도 깊이 들어가면 모호한 구석이 있다. 또한 배신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 중 하나일 것이다. 판소리에서 창작의 음악적 역량이 절대적인 경지에 오른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를 득음이라 한다. 배신은 우리네 삶 안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다. 산산조각이던 작은 조각난 것들이 처음처럼 감쪽같이 붙여질 수는 없지만, 깨지지 않았다면 절대 나지 않았을 소리가 결국에는 득음이 되는 것이다. 배신은 우리네 인생에서 찬란한 꿈을 완성하는 창조주가 인간에게 내리신 ‘큰 소리’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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