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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소속과 직함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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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7.19 16:47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학교를 입학하거나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서 반가운 만남을 갖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이니 딱히 왕래가 잦지 않았던 사이라면 대부분 근황을 묻는 말로 손에 꼽히는 말은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제 결혼 안 하니”. 이 정도 말을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두 질문은 명절 때 가장 스트레스받는 질문 1, 2위를 늘 다툰다.

단번에 입학과 취업에 성공했다면 의기양양하게 대답하겠지만 요즘 세상 뭐하나 쉬운 게 있던가. 설사 입학과 취업에 성공해서 전공과 직종을 이야기하게 되더라도 그다음 따라붙는 시퀀스는 이렇다. “어디 다니냐.”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만큼 소속과 직함을 따지는 사회도 없는 듯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는 시험을 통한 패스 여부에 달려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중국 수나라 이후 과거제도를 받아들인 나라는 베트남과 우리나라 정도다. 계급과 혈연, 신분이 아닌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만 선발하겠다는 매우 좋은 취지지만, 그다음 따라붙는 직함으로 다시 계급이 나뉘는 것도 확연하다. 오죽하면 고인을 기리는 제사 지방문에도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라 적는다. 이때 ‘학생’은 배움을 힘쓰는 학생으로 지내다가 돌아가셨단 뜻인데, 생전에 관직이나 학위가 있으면 ‘학생’ 자리에 직함이나 학위를 쓴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생전에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면 학생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의 생전 직함마저 계속 거론되는 모양새다.

요즘은 뉴스인터뷰 당사자의 이름만 표기되어 참 바람직하게 바뀌었지만, 예전엔 늘 뉴스인터뷰 당사자의 소속이나 직종이 표기되었다. 학생. 주부. 직장인. 회사원. 등등이 인터뷰하는 사람 다음에 꼭 따라붙었는데 사회적 직종의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직군으로만 불리는 게 이상하다는걸 유학을 가서야 느꼈다.

식당에서도 주문할 때 불러야 하는 호칭도 문제다. ‘아저씨’ ,‘아줌마’ 혹은 ‘아가씨’라고 부르는 건 어느 순간 결례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젠 ‘사장님’ 이나 ‘이모님’으로 통칭되고, 또 그나마도 그것 빼곤 딱히 부를만한 명칭을 찾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다. 사장님이나 이모님이 통하지 않을 프랜차이즈 매장에선 “여기요”를 구별해서 써야 하니 이것도 저것도 어려운 이들을 위해 발명된 호출벨이 그런 걱정을 덜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창작이나 예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소속과 직함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예술 분야 자체가 이를 가지기 대단히 어려운 직종이기 때문에 그렇다. 예술 분야에서 소속과 직함을 가진다는 건 교육계나 국. 공립 단체소속 단원으로 고정급을 수령하는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나 가능하지만 절대다수의 예술작품은 프리랜서 작가나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일반적인 소속이나 직함보다는 직종을 나타내는 음악가. 미술가. 연출가, 감독, 배우, 무용가. 디자이너 등의 단어가 주로 쓰인다. 그럼에도 사회적 문제나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엔 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만 요구한다. 물론 전문가집단을 나눌 기준이나 형식이 중요한 절차겠지만, 소속과 직함을 갖추지 않은 것을 직종의 전문성 유무로 따지는 것 또한 대단히 불합리하다. 그러다 보니 예술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한 예술인들이 예술인 연대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것 정도만이 예술인들의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어버렸다.

외국의 경우 오페라 극장장이나 발레극장. 공연장의 수장들은 연출가나 지휘자, 배우, 현직 예술가들인 경우가 압도적이다. 현장의 추세와 예술의 흐름을 곧바로 반영할 수 있기에 늘 새로운 시도와 실험이 시도되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물론 그 모든 일에서 빠짐없이 갖추어야 할 행정력과 정책을 밀고 나갈 정치력도 매우 중요하겠지만, 이런 모습들이 적어도 예술을 바라볼 때 행정력과 예술성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의 관점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술인들에겐 ‘어딜 다니느냐’ 보다 ‘무얼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예술인들은 그간 이루어낸 작품과 그 결과로만 평가받아야 함에도 ‘어디를’ 다니거나 나왔는지가 거론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술인들은 오로지 무대와 작품을 통해서만 평가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공연에서 연주자 프로필에 국내 출신학교, 혹은 교수나 단체대표등의 직함없이 오직 수상내역과 최종학력, 그리고 현재 작품 활동만 기재된 프로필을 보았다. 참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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