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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새를 날리다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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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8.09 14: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드디어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훤칠한 키에 단단한 어깨를 으쓱이며 얼굴은 거뭇거뭇 건강한 모습이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입영통지서를 받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세월은 화살의 속도로 전역의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늘 직장 업무에 시달리는 남편으로 인해 금쪽같은 아들과는 어려서부터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 녀석도 남편보다는 내게 이것저것 소소하게 말을 많이 걸어왔다. 일곱 살 때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쳤고,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해 매년 봄이 되면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래도 녀석은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자라주었다. 매년 어버이날이면 카네이션을 사 들고 와 이벤트를 해 주었고, 생일이면 직접 꾹꾹 눌러쓴 손편지를 써서 내밀곤 했다. 불면 날아갈까 귀히 키운 녀석이 봄날보다 더한 따뜻함으로 살가움을 드러낼 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가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이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수험생의 신분 앞으로 따라붙는 학업적 압박은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던가. 깨알 같은 수다를 늘어놓으며 참새처럼 재잘대던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무뚝뚝함으로 채워버린 아이에게 더러는 서운함도 있었지만, 그저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어떤 경우라도 부모 눈에 자식이란 하늘이고 땅이고 우주가 아니던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고슴도치처럼 까칠하게 보내고 나니 어느새 성년이 되었다. 멀리 타향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아들과의 거리는 전보다 더 멀어졌다. 온실 속 꽃 같은 얼굴은 이제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볼까 말까의 처지에 놓였다. 급기야 아들이 집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이것저것 바리바리 먹거리를 싸 들고 상경하는 쪽을 택했다. 남편은 다 큰 자식을 뭘 그리 걱정하느냐며 마땅찮은 표정이지만 부모라는 이름을 달아준 녀석에게 이까짓 수고로움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하던 날은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있던 때였다. 충남 논산으로 녀석을 데려다주는 길목에는 나무마다 주홍빛 감이 외등처럼 매달렸는데 아름다운 풍경 뒤로 심산함이 일었다. 코로나가 절정에 달해 있던 시기라 훈련소 입구에 애만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를 허허로움에 근처 커피집에 들어가 긴 시간 앉아있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러나 아들은 걱정과는 달리 훈련소 이야기를 적어 자주 편지를 써 보내왔다. 가장 많은 손편지를 받아본 시기였다. 때로는 문명의 속을 거슬러 느린 속도로 돌고 돌아와 받는 편지 한 장의 따뜻함을 몸소 겪은 시간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어제는 멀리 제주에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고 있다는 문자와 함께 한라산 백록담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다. 제대 후 아들은 제주에서 혼자 한 달 살아보기로 했다며 지난주 홀로 비행기를 탔다. 가을학기 복학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 엄마표 집밥도 많이 해 먹이고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고 싶은데 녀석은 어느새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고 있다.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많이 없어 보인다.

어느 시인이 쓴 ‘꽃다발 묶는 것처럼’에는 “새 한 마리 손안에 쥐었다 하자. 내 삶에 꽃 같은 사람을 만날 때, 그 인연과 오래오래 나를 묶고 싶을 때”라는 시가 있다. 녀석을 생각할 때마다 이 시를 떠올린다. 어디에서든 건강하고 따뜻한 품성만 간직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진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로 바라만 보리라. 그저 가끔 여자친구 상담을 물어오면 반갑게, 녀석의 결혼식에 고운 한복을 입고 초에 불을 켜는 즐거운 미래를 꿈꾸는 것. 그렇게 나는 지금 내 안의 새 한 마리를 창공 높이 날려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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