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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벌초를 다녀와서

임성일 대전온누리신협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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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2.08.30 13: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임성일 대전온누리신협 이사장

뜨겁게 대지를 달구던 여름도 기세가 꺾이는 시기가 되었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면서 더 이상 열대야와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올 여름은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호우로 몸살을 앓았다. 지친 몸과 마음은 신선한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겨진다’는 속담처럼 초가을 햇볕이 따갑게 느껴지는 시기이다. 이쯤은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주말을 이용해서 벌초를 했다.

추석을 2주 정도 앞두고 벌초를 하는 것이 조상에 대한 예의로 배워왔던 터라 주말을 이용해서 벌초를 다녀왔다. 이른 아침 아들과 함께 필요한 예초기를 비롯하여 도구들을 챙기고 성묘에 필요한 음식(제수)을 간단이 준비해 길을 나섰다. 몇 년 전 벌초하다가 땅에 있는 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일 뻔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로는 음료, 포도와 같은 단 음식은 절대 안가지간다. 물론, 향수와 화장품 사용도 안한채 작업복 차림에 안전모까지 착용하고 나섰다. 지난해 소방본부 119 출동 통계를 보면 예초기를 쓰다가 다치는 경우보다 벌 쏘임에 따른 구급 출동은 더욱 많다고 한다.

길가에 연분홍빛 코스모스가 흔들흔들 가을을 부르는 미소로 들린다. 산언덕을 오르다보니 무성한 풀들이 아직 여름의 여운을 붙잡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으로 여름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듯하다. 주변에 여기저기에서 예초기 돌아가는 기계소리가 매미울음을 덮어버린다. 봉분 주변에 잡목들을 낫으로 정리하는 아들 녀석은 땀을 흘리면서도 요령도 부족하고 경험 미숙으로 영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3대 독자로 태어난 나로서 하나있는 아들이 그나마 다행스럽지 않나 위안해본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큰 불효는 오랫동안 조상님 묘소를 돌보지 않아 거칠게 된 ‘묵뫼’를 만드는 것으로, 앞으로 시대가 갈수록 상당수 묘지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문중에 벌초에 참여하는 인원도 줄고, 남아있는 가족만으로 많은 조상묘를 관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대변천과 빠른 핵가족화로 매장문화에서 화장 문화로 바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조상의 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의 고민이다. 2001년 분묘의 사용기한을 최장 60년으로 제한, 그 이후에는 반드시 분묘를 개장해 화장 또는 봉안하도록 한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화장율은 1993년 19.1%에서 지난 2005년 56.5%를 거쳐 2018년에는 86.8%를 보이고 있다. 지역적으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제 화장률은 90%를 육박한다.

유교문화와 효문화의 가치가 변하고 있다. 문화가 변하여 벌초대행까지 성행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일이다. 저출산 등으로 인구사회구조가 변하면서 장례문화 편의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장사시설을 돌볼 수 있는 후손들도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설 관리와 보관·유지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묘지와 봉안시설은 더 이상의 절대 대안이 아니라는 인식이 대세다.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몇년 전에 돌아가신 부친은 수목장으로 장사를 모셨다. 문중에 친척 아저씨께서 그나마 벌초해주시고 관리해주셨는데 작고하셨으니, 선산에 모셔있는 고조부모 산소부터 조부모 산소까지 어찌 감당해야 하는지를 물으니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한다. 각 가정마다 벌초 할 무렵부터 추석 성묘 때까지 묘소와 장사시설에 대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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