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세상사는 이야기] 동네북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2.11.22 10:26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살다 보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이야기지만 핼러윈 기간에 일어난 참사로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런 슬퍼해야 할 일들을 살아내는 데는 모두에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슬픈 일을 애도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국가 애도 기간엔 조기를 게양하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을 자제하며 유족들과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에 심적으로나마 동참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사람들이 문화행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즐기고 노는 여흥의 연장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예술창작 활동의 목적으로 문화예술 활동과 연관산업으로 해석하는 관점까지 다양하다. 개개인의 생각과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정말 당혹스러운 관점이 있다. 문화예술 활동을 단순 여가나 여흥으로 보는 것을 넘어 애도의 시간에 침묵과 자제를 당연히 강요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시선이다. 이 시선에는 여흥과 공연을 굳이 분리하지 않고 한 묶음으로 보는 꽤 후진적인 사고방식이 담겨있다.

핼러윈 참사 이후로 갑자기 공공기관 주최의 연주회들이 취소를 결정했던 사례들이 있었다. 야외축제가 아닌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음악회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몇몇 시립예술단과 지역 예술회관들이 국가 애도 기간에 공연취소를 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인들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부터 코로나 사태까지 10년도 채 안 되는 동안 너무 많은 파도를 겪은 탓일까.

소프라노 조수미의 일화를 들여다보자. 전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보석 같은 우리나라의 글로벌 아티스트. 그런 조수미가 2006년 파리의 샤틀레 극장 무대에서 열린 데뷔 20주년 독창회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부친의 부고를 접했다. 공연 전이었다. 공연취소를 고민하고 있던 그녀에게 모친이 직접 전화해서 했다는 말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네가 파리에서 관객과 약속을 지키며 공연하는 걸 더 기뻐하실 것”이 이야기는 이후 여러 매체에서도 언급되었다.

조수미는 예정된 정규레퍼토리를 모두 소화했다. 그것도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무대에서 웃고 연기하며 다채로운 색깔로 프리마돈나로서의 기량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훗날 조수미는 성악가라는 직업이 그토록 잔인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공연의 막바지에 조수미는 아베마리아를 앵콜로 택하며 관객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전했다. “저희 아버지를 위해 기도드리고 싶은데요. 오늘 아버지가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늘에서 저와 여러분이 함께 있음을 굉장히 기뻐하실 거라 믿습니다. 오늘 밤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 번도 아버지를 잊은 적 없어요. 그래서 이 콘서트를 아버지께 헌정하고 싶습니다.”

공연과 여흥은 제발 분리되어 다루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지인이 ‘당신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건넸던 말이 떠오른다. 맞는 말이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과 기호를 직업으로 삼는 일은 언뜻 보면 굉장한 행운이다.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그런 예술가는 자신이 가진 기량과 역량을 끊임없이 남에게 평가받는다는 사실이다. 무대 위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고 경우에 따라선 그로 인해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게 평생 그 일만을 해온 예술가가 무대를 내려와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얼마나 될까.

공연에서 본인의 성취감이나 만족도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좋아서 하는 일은 동호회 활동이라고 부른다. 공연은 연주자와 관객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준비하는 사람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예술인에게 공연은 여흥이 아닌 작업의 완성이고 업무의 장이다.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업자인 셈이다. 하물며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와 협업, 그리고 예술적 기량으로 준비하는 연주회는 그래서 그간의 과정을 관객에게 평가받고 인정받는 냉엄한 평가의 장에 올려놓는 사람들의 결과물이다. 누군가에겐 하룻저녁의 여흥으로 여기는 그 공연은, 연관된 수많은 사람이 적게는 몇 주부터 많게는 수개월을 준비하며 찰나의 순간에 실수가 없도록 수없이 가다듬고 땀 흘렸던 시간의 집합체다. 그렇게 쉽게 취소를 결정지을만한 일이 아님에도 이런 종류의 일이 터지면 연관성과 타당성을 따지느니 혹시 모를 시시비비에 휘말리지 않으려 취소가 먼저인 상황이 갑갑하다.

공연은 늘 동네북 취급이다, 일만 생기면 여기저기서 두드려댄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