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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한 소식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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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3.07.03 16: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혜숙 수필가
신록이 어느새 녹음으로 바뀌고 있다. 여린 잎이 반짝이는 걸 보고 싶었는데 매년 이맘때 느꼈던 신록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부처님 오신 날이다. 가까운 사찰로 가려다가 4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스님이 문경의 대승사 내 암자에 머물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년 전에 암자에서 머문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손녀를 키운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해서 이번에 마음을 냈다. 평생을 선객으로만 살던 분이라 걱정도 되고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기도 했다. 선방으로만 다니는 분이라 10년도 더 못 뵌 것 같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손녀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단거리는 혼자 데리고 다녔어도 장거리는 딸이나 남편과 동행했었는데 걱정이 되어 망설이다가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가는 곳이지만 자주 다녔던 곳이라 그런지 길이 눈에 익어 마음이 편안했다. 다행히 아가도 칭얼거리지 않고 잘 참아 줘서 고마웠다. 푸르른 산천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니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아졌다.

대승사 주차장에 도착해서 스님에게 전화했더니 안 올 줄 알았는데 왔다며 무척 반가워한다. 보현암이란 아주 작은 암자에 들어서니 도량이 온통 풀이다. 신도는 한 명도 안보이고 부처님오신날임에도 연등이 하나도 걸려있질 않았다.

서너 명만 들어가도 꽉 찰 것 같은 법당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법당 옆에 붙은 작은 방 하나. 역시 선객다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손녀는 처음 보는데도 낯설지 않은지 붙임성 있게 스님에게 다가갔다. 딸이 5살 때 만난 스님인데 아이하고 얼마나 잘 놀아주는지 딸도 무척 따랐던 스님이라 그런지 손녀도 그냥 할아버지 만난 것처럼 반갑게 다가갔다.

40여 년 남짓한 세월의 저편 포항의 작은 암자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스님은 60대 중반인데도 선방에 방부만 들인다. 한 소식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끊임없이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스님을 보니 세속의 때를 잔뜩 묻혀 찾아간 내가 부끄러웠다.

대승사의 부처님 오신 날은 도량이 좁아 보일 정도로 신도들로 가득 찼었는데 불자들이 전보다 줄어든 것 같다. 도량은 한산하고 법당에 스님들과 많지 않은 불자만 있다. 불자가 줄어든 건지 사는 게 팍팍해진 건지 씁쓸했다.

이리저리 신나게 돌아다니던 손녀는 도량 입구에 서서 사찰을 찾는 불자들에게 합장하며 인사를 한다.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본 불자들은 귀여운 아기 모습에 환한 미소로 답했다. 사찰에서 봉사하는 불자는 우리 아기를 보더니 대승사 마스코트라며 사탕이며 과자를 안겨준다. 과자나 사탕에 관심이 없는지 받는 즉시 나한테 주고 합장하며 고개 숙이기를 멈추질 않는다.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합장하는 걸 가르쳤더니 제법이다.

사찰 도량에는 커다란 개 두 마리가 한가롭게 거닌다. 얼마나 순한지 아기가 다가가 쓰다듬어주고 머리를 잡아당겨도 배를 보이며 편안하게 만질 수 있게 눕는다. 자기를 만질 수 있게 누워서 아가의 손길을 귀찮아하지 않는 걸 보니 개도 불자인가보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 불자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아기를 웃으며 바라본다. 아마도 집에 손주가 있지 싶다.

법문을 듣는 둥 마는 둥 손녀를 따라다니다가 다시 보현암으로 왔다. 꽃밭인 듯 여러 가지 꽃이 피어있는 곳에는 풀이 꽃보다 더 실하게 자라있다. 시골 사는 사람의 습성이 어디 가겠는가. 풀을 뽑고 있자니 스님이 큰 절에서 오시더니 나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오면 보현암이 예뻐지겠다고 해서 웃었다. 청소도 해 주고 싶었는데 손녀를 쫓아다니느라 하지 못했다.

군중 속의 고요라 했던가. 큰절엔 사람들로 북적여도 보현암은 적막강산이다. 큰절과 거리가 오백 미터도 안 되는데 참선하기에는 천혜의 조건이다. 선방만 다니던 스님답게 암자 역시 스님에게는 선방이다. 이번 하안거에는 대승사 선방에 방부를 들였다고 했다. 걸망 하나 지고 지내온 세월. 스님의 공부는 얼마나 깊어졌을까.

큰 절에 가서 공양을 해결하고 암자에 와서 정진하는 스님의 삶이 세월이 더해질수록 빛이 나길 기도했다. 스님은 깨닫기 위해 밤낮으로 용맹정진하시는데 나는 불자로서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세속에 허덕이고 마음이 나태해진 불자는 불법의 가르침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채찍질을 했다.

먼지가 쌓여있고 잡초가 우거져 쓸쓸해 보였던 보현암이 돌아오는 내내 마음을 잡는다. 깨달음의 기쁨을 맛보고자 세속의 인연마저 끊어버리고 선방으로만 다니시는 스님. 왠지 쓸쓸해 보이고 안타까워 보이는 건 세속의 잣대겠지. 그런 생각하는 내가 부끄럽지만, 세속의 잣대를 들이대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중생임에 틀림이 없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담금질하는 날이 된 것 같다. 언감생심 한 소식은 아니래도 불법의 가르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왜 사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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